최근에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했다. 애플펜슬을 이용해서 회의 할 때 노트도 하고 이메일도 즉시 확인하고 논문도 본다. 새삼 편하기 그지 없다. 그러다 요 며칠 갑자기 사내 와이파이망에 접속이 잘 안되었다. 와이파이가 잡히면 등록되지 않은 기기이므로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메세지가 뜬다. 셀룰러 모델이라 다행이지, 와이파이 모델이었으면 기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셈이다. 전산 담당에게 문의하니 IP를 잘못 인식해서 태블릿(모바일 기기)이 아닌 노트북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5-6년 전만 해도 회사에 맥북을 들고 다녔다. 정식으로 주는 기기는 윈도 전용의 노트북이지만 맥을 쓰는게 좋았다. 실제로 논문 관리나 글 쓰는 앱 등에서 완성도, UX, UI 등에 차이가 있다. 맥북을 쓰던 당시 (내 개인적으로는) 생산성이 더 좋았다. 논문도 많이 읽고 썼고 다양한 생각들도 많이 했다. 어느 날 부터 더 이상 맥북을 쓰지 못하게 된다. 사내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어 더 이상 사내 망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맥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해 줄 수는 없었을까? 보안 담당자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보안의 이슈로 통일성 있고 편하고 쉬운 방법을 택하면 된다.
이해는 된다. 회사에서 정보의 유출이란 끔찍한 재앙이고 반드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 동감한다. 동감하면서도 나는 당시 좌절감을 느꼈다. 개인의 다양성 보다는 통제와 규제가 더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사내 보안 정책은 더더더 강화되어 갔다. 이제 사무 공간에 들어오면 전화기의 카메라도 작동을 멈춘다. 위치 기반으로 앱 권한이 사라진다. 놀라운 세상이다.
더 일하기 좋은 상황일까?
요즘 보고 있는 책에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어 소개한다.
어떤 사무 공간이 생산성에 좋은지에 대한 실험이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정리된 사무실은 근무자에게 압박감을 주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전시장 같아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약간 장식 요소 (사진, 화분 등)를 더하면 어떨까? 앞선 사무실 보다는 업무 성과가 높아졌다.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사실 더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가장 생산성이 높았던 사무실은 근무자 스스로 그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만든 경우였다. 사진과 화분 등의 요소는 그대로 제시하되, 다른 누군가가 이미 배치헤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사무실을 쓰는 구성원에게 꾸미는 자유를 주었다.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사무 공간은? 일단 스스로 꾸밀 수 있게 해 준다. 여기까지는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실험자가 원래 장식이 있던 위치 그대로 돌려 놓는 것이다. 자율권을 박탈당한 사무실에서 피실험자는 사기를 잃었다. 일의 능률은 당연히 떨어졌다.
보안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리라는 것은 '관리자' 입장에서 설계되고 구현되기 쉽다.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백만 스물한가지다. 어떤 이유든지 가져다 만들 수 있다. 해서는 안될 것을 강제하고 규율로 정해서 관리항목으로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것과 업무 생산성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레퍼런스를 찾은 적은 없다. 효율성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생산성은 반비례 하거나 악영향이 있지 않나 직관적인 결론을 내본다.
더 큰 문제는 근무자가 느끼는 자율권을 빼앗기는 것이다. 난 여전히 보안 지침을 개인의 자정 능력에 의지해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찍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은가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안되니까, 정책이 그러니까, 원래 그런 것이어서 ... 가능성은 접히고 상황에 적응한다. 프로세스는 복잡해지고 의사결정은 늘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은 해도 되는 것을 고민하기 보다, 해서는 안될 것을 지키는 문화를 형성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문화와 분위기 속에서 의외성을 가진 혁신이라? 가능성은 있겠지만 탄생의 기회는 줄어들지 않을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는 좋을지 몰라도 맛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