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Jan 27. 2016

혁신의 굴레

직장에서 겪는 혁신 딜레마

3-4년 전쯤 일이다. 

새롭게 부임한 소장님이 몇 명을 부르셨다. 

들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 동안 혁신적이었던 제품의 개발 프로세스를 분석해 보면 어떤 요인들이 혁신제품을 탄생하게 한 것인지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 회사의 제품들 중 혁신적이었던 (이라고 쓰고 잘 팔린 제품이라고 읽는다) 제품의 개발과정을 분석해 보자고 하셨다. 그러면 분명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아쉽게도(?) 이 일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큰 의미가 없는 일을 왜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 때 분석을 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만약 혁신제품의 개발 과정을 분석해서 프로세스화 하고, 앞으로 개발되는 제품을 그 틀에 맞추었다면 과연 혁신제품이 탄생했을까?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다고 하지만, 난 99.99999% 실패했을 것이라고 본다 (참고로 나는 기술개발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혁신의 관점은 다분히 기술자 중심의 마인드와 관점이다). 


베스트셀러와 혁신제품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얼마 전 회사의 제품 역사를 전시한 공간에 다녀왔다. 우리 회사 제품은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접하니 어, 이런 것도? 라는 것도 있었고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저기 보던 중 말로만 전해지던 제품들을 만났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제품. 지금 봐도 분명 혁신적이긴 한데 과연 시장에서 고객들의 사랑을 받을까? 

필요충분하게 혁신적인 기술로 제품이 만들어져도 고객에게 선택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술 혁신이 반드시 고객의 사랑(판매)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기술 혁신은 말 그대로 기술적인 부분에서 기존과 다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때때로 기술 혁신의 가치는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되기도 한다 (매니악한 IT 기기라던가..). 물론 마니아층/특정한 고객군을 통해 입소문을 타던 제품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혁신이 일어나는 환경이란?

혁신제품의 개발 과정은 잘 짜여진 일련의 프로세스가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혁신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가 스티브 존슨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 소개되고 있다. 

사실 혁신의 굴레라는 제목의 글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쓰다가 멈추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만으로는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마침, 작년에 회사로부터 받았던 - 그리고 당시엔 재미없는 책으로 책상 옆에 쌓아두었던 - 이 책을 읽으면서, 마무리 할 수 없던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도 언급되듯 완성된 아이디어가 되려면 여러가지 생각과 사실들, 근거가 필요한데 내게는 백업 데이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들이 이 책에서 말하는 느린 예감, 세렌디피티, 우연한 연결 등의 예시가 될 수도 있다.


내용이 전개될 수록, 하고자 하는 말의 변주가 진행될 뿐 핵심은 명확하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서 충돌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이라면 그런 환경을 갖추도록 해야할 것이다). 굴절적응이던, 도시의 하위문화던 원래 지향했던 것에서 새로운 기능과 효과를 갖는 새로운 역할을 발굴 했을 때 혁신의 기회가 있다. 모더니즘의 급격한 성장 이유를 시인, 화가, 건축가들의 이문화 교류에서 찾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순혈주의나 유사 전공자들의 모임에서는 '깊이 있는' 진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전혀 새로운 혁신의 기회요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이상해 보이는 결과를 동일한 기준에서 판단함으로써 신호가 아닌 잡음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 실험처럼 의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이 실험에서 .. 의사결정 과정에 일부러 잡음을 넣었고, 그 결과 진실과 실수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추정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을 알아냈다. 잘못된 정보로 오염된 집단이 순수한 정보만 주어진 집단들보다 더 독창적인 연결을 한 것이다. .. 그녀의 연구는 혁신에 대한 모순된 진실을 암시한다. 즉, 좋은 아이디어는 일정량의 잡음과 실수를 포함하고 있는 환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다른 전공자가 섞여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회사에서 이런 노력들을 무척 많이 하고 있다. 가능한 모든 활동을 해본 것 같다. 때로는 인트라넷을 통해, 때로는 공개적인 발표회를 통해서, 때로는 집단 지성의 모토 아래 조별 활동을 통해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인트라넷에서의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도 적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부연이나 가치 확장을 시키는 경우가 적었다. 그에 비해 오프라인 발표회에선 보다 활발한 아이디어와 논의가 오고간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 때 뿐이다. 집단 지성은 꽤 흥미로운 접근이긴 했으나 별로 효율적이지 않았다. 다 같이 모여 서로 다른 얘기만 하거나, 열 명이 모이면 한 두명을 제외하곤 아예 관심이 없거나. 

그냥 섞여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보가 흐르고, 그 정보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자발적으로 고민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때로는 그 고민을 예전부터 오랫동안 해 온 전혀 다른 관점 (전공)의 전문가가 등장하면 더더욱 좋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아이디어란 단지 하늘에 가만히 떠 있는 구름과도 같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구름이 만나 비를 내리거나 천둥이 치는 상황이 펼쳐질 때, 혁신의 시발점이 나타날 것이다.


혁신이 힘든 이유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발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다. 그 보다는 가능성 있는 생각들을 잘 정리하고 연결하는 세련됨의 부족,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인드의 부족과 같은 것 때문이다. 무엇보다 혁신을 위해 강요된 환경/시스템은 초기 혁신문화 정착(?)이라는 미명 하에 당위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언정 지속가능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영의 묘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사에서 억지로 시키는 혁신활동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혁신을 강요받고 있다. 

혁신적인 신기술을 고민해야 하고, people managing도 혁신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끊임없는 고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잘 될 것이라고 믿음을 가진 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백의 위대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