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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현실너머편을 읽고

by nay

처음에 본 영화나 책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감독의 또는 작가의 다음 편이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곤 한다.

정작 그 차기작을 만났을 때 2년차 증후군, 전편 만한 속편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등등의 수식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예전에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정말로 너무 감명 받아서.. 이 사람의 책은 무조건 재미있을거야 싶었는데, 그의 철학적 서적들을 몇 권 산 후 나의 첫 인상이 잘못 박혀 있었군 싶었다. 물론 몇년 후 그의 새로운 연애 소설 '사랑의 기초 한 남자'를 보고, 역시 이 작가의 책 중에 연애소설이 나랑 잘 맞는군 하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사설이 길었는데.. 지대넓얕 2편 - 현실너머는 나에게 비슷한 경험을 느끼게 해주었다. 브런치에도 간단히 적은 바 있지만, 이전의 현실편이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생각되어 바로 2편을 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 책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잘 읽히지도 않고 (특성 상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하다만) 재미가 떨어졌다. 그 기대수준이 너무 높았던 탓일까? 분명 그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면..


1. 현실 너머라는 주제처럼, 다루는 내용이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라는 점. 특히 제일 먼저 나오는 철학편이 상대적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어떤 철학사조가 있었고 누가 주장했고 핵심은 무엇이고.. 이렇게 되다보니 재미보다는 정말 '얕은 지식'의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 책이 추구하는 본질에는 충실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가장 지루하고 가슴에 와닿지 않는 철학편이 맨 앞에 있는 건 나에게 있어 안좋았던 점.


2.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학은 아무래도 내가 관심이 있는 영역이다 보니 쉽게 읽히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상대성 이론은 예전에 과학동아 잡지 시절에 몇 번 씩이나 보았던 내용이라 그런지 말 그대로 '상대적으로 잘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비전공자 입장).


3. 전 편에 비해 재미가 없었던 것은.. 현실에 발을 두고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을 안고 사는 내 입장에서 인류의 철학사, 과학사, 종교..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까닭이지 싶다. 그 현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철학, 예술.. 이런 것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팍팍하고 냉정한 상황이 더더욱 이 책의 가치를 스스로 폄하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고백하건데 요즘 내 주위를 둘러싼 상황들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마음이 붕 떠있긴 하다.



사실 이 책은 회사에서 셀프 도서 교육의 일환으로 신청해서 받아 본 것이다. 하여 책을 다 읽고 나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바로 오늘 그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무난히 통과. 그런데 시험을 다 보고 나니 갑자기 책의 내용이 덜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아직 보지 않은 뒷편의 내용들이 재미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혹시, 재미가 없던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시험문제에 나오는 것이 뭔지 공부하듯 읽었던 나의 태도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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