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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l 24. 2020

나를 온전히 만나는 글쓰기

한 달 전, 내 이름을 단 책이 세상에 나왔다. 남들이 작가라고 불러 주는데 낯설고 쑥스럽다. 작가라는 건 어딘가 더 전문가적인 모습 같다. 아직 아마추어인 내게 작가라는 명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으로 책을 내보니까 출간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심자에게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 착시 효과랄까? 하긴, 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 '와 이렇게 써서 팔 생각을 하나?' 싶은 그런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라면 훨씬 괜찮은 글을 쓸 것 같은, 근거는 많이 부족한 자신감이 최근 내 맘 속 깊이 차 오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출간 이후 들뜬 마음 때문이었을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전자책을 잠깐 보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 올랐다. 다음에 또 내고 싶은 책의 주제가 번뜩이며 생각난 것이다. 집에 오는 내내 생각을 해도 참 괜찮아 보였고, 이 세상 어디에도 아직 그런 책이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거야?'

스스로를 칭찬도 했다. 생각난 김에 아예 목차도 쭉 적어 보았다. 술술 써지는 것이 마치 준비된 것을 풀어놓는 것 같아, 이미 상상 속에서는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지고 있었다. 와.. 이거 대박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어쭙잖은 기대까지 하면서 말이다.


막상 목차를 뽑고 나니 컨텐츠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각 잡고 책상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뭘 쓰지? 

글을 쓰려는데 제대로 전개가 되지 않는다. 답답했다. 이거 쓰기만 하면 대박인데 하는 생각에 뭐라도 자료를 찾으려고 기사도 뒤져보고, 전에 써 둔 독서 노트를 다시 찾아보았다. 억지로 몇 줄을 쓰기 시작했다. 그나마 글 쓰는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찌 써 지기는 한다. 그런데 영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며칠을 고민 끝에 글을 마치고, 막판까지 다듬어서 늦은 밤 브런치에 포스팅을 했다.


뭐랄까,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전에 쓰던 글에 비해 분명히 신경을 많이 쓰고 몇 번이나 다듬은 글이 분명한데.. 조회수가 올라갈수록 괜히 글을 올린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었다. 지금도 포스팅을 내릴까 하는 갈등이 남아 있을 정도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그게 내 것 같지가 않다.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었더니 글에 영혼이 없는 느낌인 것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회사에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던 동료가 필요한 내용이 있다고 하여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공유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한다.

"오.. 이거 '있어빌리티' 해 보이는데요"

"있어....응? 그게 뭐예요?"

"아, 있어 보인다고요"


아하. 아마도 <있어 보인다>+<Possibility>의 합성어 정도 되나 보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다 보면 상사가 좋아할 표현, 소위 있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다. 아무 말 안 적어도 되지만 괜히 있어 보이게 스리 맘에도 없는 인사이트를 억지로 써 놓은 적 많았다. 사실 정작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있어 보이는 화려한 단어들로 치장한 보고서 아니었던가! 정직하고 담백한 표현으로는 사업의 의지가 안 보인다고 생각해서일까? 단어 하나 고치느라 상사와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린 시간들도 있었다. 남의 보고서를 보면 어디서 그런 멋진 단어들을 찾아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구나. 있어 보이고 싶었던 그 글은 열심히 보고한 뒤에 아무도 책임질 생각하지 않는 허무한 정기 보고서와 같은 느낌이었다. 글 속에서 나를, 내가 가진 생각을 찾을 수 없다. 분명 직접 타이핑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건 맞는데 이상하게 내 글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나를 마주하는 가장 솔직한 순간은 글을 쓰는 때였다. 항상 글을 쓸 때는 회사에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상사와 동료를 수시로 마음껏 소환했었다. 그들은 미안하지만 (고맙게도) 내 글의 소재가 되어 주었다. 맘에 들지 않는 회사 정책에 대해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툭 털어놓으면 약간이나마 스트레스를 덜어 놓을 수 있었다. 남 탓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가끔 이불 킥 하고 싶은 글을 남겼음에 하.. 왜 그랬지 싶은 마음이 들지만 차마 글을 지우지는 못하겠다. 예쁘지 않은 모습도 결국 나의 일부니까.


글을 쓰는 동안은 작은 집중의 순간이지만, 그때만큼은 좋은 사람 코스프레보다는 솔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새삼 감탄하면서, 또한 감사해야함을 깨달았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자신을 오롯이 쳐다볼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만난 인연들 속에서, 인연들과 있었던 사건들 속에서 나란 사람을 똑 떼어내 이런 방향, 저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남들이 읽기 좋게 다듬어 가면서 내 생각도 더 다듬어져 간다. 


그러니 더더욱 있어빌리티 하지 않게, 투박하더라도 솔직한 생각을 담도록 해야겠다.

너무 진부하게 결론을 맺으려니 이래도 되는 걸까 싶지만,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이 때가 나는, 가장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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