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을 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Nov 13. 2022

소설 읽기- 상상력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

Fact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을 주된 업무로 하다 보면 사람의 정서가 대개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다.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이성적인 업무 방향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연구직의 특성상 숫자와 그래프로 이루어진 데이터를 눈앞에 두고 이게 맞는지, 해석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으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회사를 포함해서 개인을 둘러싼 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인간) 관계를 통해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 그걸 조금 나쁜 어감으로 표현하면 학연, 혈연, 지연일 것이다. 


서른 후반, 마흔 초반에 조직에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극에 달했을 때 주로 개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계발서를 많이 접했다. 리더십과 조직 관리에 목마름이 있었고 책을 통해 필요한 것을 찾고 싶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실제로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 그때 읽은 내용들 중에 여전히 염두하고 있는 것도 있다. 약간 집착하듯 재미를 찾았었지만 더 이상 자기 계발서에 흥미를 잃은 것은 책의 제목이 다를 뿐 동어 반복적인 내용, 내가 처한 현실과 다른 상황의 전개를 비롯해 정작 그걸 제대로 써먹을 기회가 마땅치 않았던 이유 등 다양한 상황이 맞물려서였다. 이후에는 개인이나 회사의 성장기를 정리한 책을 좀 봤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티브 잡스> 전기라던가 나이키 회사의 역사를 담은 <슈독> 등이다. 누군가의 시도, 좌절, 실패 그리고 극복과 성공의 이야 기는 신화적 요소를 담는 한계가 있더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에 비해 소설은 별로 내키지 않는 영역이었다. 가상의 이야기와 끝이 예상되는 전개를 시간과 돈을 들여, 그리고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투여하고 싶지 않았었다. 자기 계발서나 경영서가 아니라면 차라리 에세이가 좋았다. 에세이류도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자기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전달하는 것들, 예를 들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같은 종류를 선호했다. 그러니까 나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기보다는 담담하고 냉정한 현실 세계를 떠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차라리 소설을 읽을 시간이라면...' 하는 질문과 답변의 가치 판단이 명확했다. 실용서의 효용성을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소설을 하나 둘 보기 시작했는데 나의 생각이 영 틀렸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잠시라도 푹 빠져 그의 감정을 가져오기도 하고,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하며 결말이 다가올 때 안도하거나 슬퍼하게 되었다. 참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그전에 소설을 배척하듯 멀리한 것은 아니나 즐겨 찾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달라진 나를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이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끝냈을 땐, 분명 슬픈데 희망적인 묘한 기분을 느끼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지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느라 힘들었다. <숨>(테드 창)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대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 매번 놀라며 과학 소설의 매력에 흠뻑 젖기도 했다.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보면서 잠시나마 내 글의 의미와 글 쓰는 행위, 작가라는 타이틀과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감정 이입해 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의식적으로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자리에서 접해야 하는 수많은 보고서와 정책들, 그리고 힘든 의사결정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로서 소설을 접했다니 시사하는 바가 있다. 누구보다 더 Fact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반대로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소설을 택한 것이다. 내 편 아니면 적, 내 생각 아니면 다 틀린 판단과 같이 한 가지 시선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현재 겪는 많은 사회적 갈등은 (다른 사람을 향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오는 이해의 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일터로 돌아와도 비슷하다.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회사에서 성장하고 다른 사람을 리드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에서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하는 마음 아니겠나. 글로 배운 리더십에는 세밀한 기술은 있을지언정 감정은 철저히 배재된,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나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회사 업무를 떠나 인간관계, 가정생활에서 '나 중심'의 사고를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자기반성적 회고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팍팍하고 답답한 현실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재미있는 소설책 하나 집어 든다면, 주변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빼꼼 열리지 않을까 해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온전히 만나는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