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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21. 2022

누구나 어떻게든 글쓰기는 가능하다.

연구자의 대표적인 글쓰기는 논문, 회사원의 그것은 보고서이다. 나는 연구자이자 회사원으로 살아왔으니 논문도, 보고서도 적잖이 써봤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도 많이 했다. 논문과 보고서를 쓸 때는 글의 기승전결이 매우 명확하다. 주제가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적절하고 풍부한 재료(데이터)가 있으며, 주장하고자 하는 결론 역시 논리적이다. 특히 논문이 어려운 이유는 가설을 설정하고 그걸 증명하는 과정, 논리적 오류와 억지 없이 순전히 데이터로 주장을 설파해 내야 하는 것 때문이다.


에세이의 영역은 다르다. 사전에 따르면 에세이는 '일정한 형식이 없는, 그리고 체험과 느낌을 자유롭게 쓰는 글' 정도로 정의된다. 그렇기에 쓰는 것이 쉽다고 느낄 수 있지만 논리가 완전한 글에 익숙한 나로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많았다. 에세이는 형식미와 데이터로 얘기하는 글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논리적 주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전개만으로 충분하다. 개인적 의견에 국한해도 문제 될 바가 없다. 


회사와 연구 생활은 체계가 중요한데 어쩐 일인지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은 상당히 비체계적이다. 어떤 하나의 이벤트가 생기면 거기서 파생된 생각의 실타래를 조금 풀어놓는다. 처음엔 그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글도 써 본 사람이 살을 더 잘 붙이는가 보다. 어떻게든 완료된 작은 이야기를 끙끙거리며 이렇게도 덧붙이고 저렇게도 떼어내 봤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완성이 된다. 시작은 단순한 한 문장, 한 문단이었던 것이 앞뒤로 늘어나는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도 신기하다. 


때로는 이런 방법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의식의 흐름, 자유 필기법 같은 걸 빌려오기도 하는데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경우 순식간에 글이 완성된다. 술술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 마법 같은 경험을 한다. 물론 시작과 달리 다른 의도의 글이 완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써진 글이 싫거나 이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조금 더 솔직하고 진솔한 면이 없지 않아, 어쩌면 이게 더 바람직한 에세이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글은 처음부터 설계도를 가진 채 시작하기보다는 전체 도면의 일부를 완성해 둔 채로 나머지 공간을 구성해 내는 식이다. 그렇지만 가능한 핵심이 되는 한두 문장은 꼭 마련하려고 한다. 아무리 설계도가 미흡한들 전체 글의 논지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욕심이다. 직업병인지 습관인지 내 논리의 흐름이 방해받기는 싫은 것도 있고. 


설계도 없이 시작하였으니 끝끝내 마무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글을 썼음에도 결론이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다. 그럴 땐 쓴 것이 아까워서라도 남겨두는데, 어느 날 다시 그걸 열어보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뒤의 이야기가 가볍게 연결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끝을 맺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빠는 들어주잖아’라는 글은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처음 글은 아이의 '말'에서 시작했다. 에피소드를 다 적고 나니, 나는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것이었나 싶어 아쉽지만 글을 닫아 둘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저장해 둔 그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엮이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혈이 뚫린 것이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이상 매일 머리를 싸매고 글감을 찾고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운명처럼 어떤 이벤트가 생기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나의 경험과 연결되어 글로 탄생했다. 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나 하나의 글로 연결되는 경험을 해 보았다. 완성이 안될 것 같은 글을 애정어리게 들여다 보면 할 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니 지나치게 조급해하거나 난 글쓰기를 못할 체질이야라고 속단하거나 속상해하지 말 일이다.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었던가? 이런저런 사례를 통해 쌓인 경력이, 마치 마법처럼 발휘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누구나 어떻게든 글쓰기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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