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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16. 2022

아빠는, 들어주잖아

요즘 아들의 최대 관심사는 게임이다. 작년 초반까지만 해도 마인크래프트 하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는데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브롤 스타즈를 한다. 아쉽지만 그에게 주어진 게임 시간은 무척 제한적이다. 어찌나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는지 옆에서 보면 재미있고 안쓰럽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앞에서 행동하거나  캐릭터의 음성 흉내를 내곤 한다. 


  내가  모르는데도 와서 종알종알 떠드는 거니?’

아빠는 들어주잖아

엄마는?’

엄마는 듣지 않고 만날 핸드폰만 한단다. 아이고야.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경청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실 내가 했던 행동이란 것이 별 것 없다. 어차피 아이가 하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있거나 본 적 있으면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뭐냐, 왜 그런 공격을 했냐 와 같이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로 이해한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회사에서 과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 - 같이 일하는 동료 -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거창한 사업의 의도와 미션을 떠나 밥벌이 수단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공감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굳이 공감이나 동감하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화자의 의도와 무관하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들어줄 자세를 취하는 상황이 된다. 슬프게도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어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물론 같은 말이라도 전달의 방법과 형성된 관계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어쨌거나 경청하고 받아주는 동료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여전히 본질적으로 회사의 위계질서와 개인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누군가의 말빨을 가늠하는 것이지, ‘인간  인간'으로서의 소통은 다르게   있다.


집에 오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들의 말을 들어주기도 해야 하고, 아내의 잔소리를 자주 들어야 한다. 밖에 나가면 나름 말빨 먹히는데 집에선 어째 주로 듣게 된다. 어떤 때는 그날 점심에  먹었는지 정도의 가볍고 사사로운, 그리고 별다른 동의가 없어도 충분히 듣고 떠들  있는 이야기로 가득 찬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사회에서도 역할과 책임에 따른 대화의 주제가 오고 가기 쉽다. 예를 들면 아내와는 집안 대소사, 경제 상황과 같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일을 다룰 때가 많다. 아이와는 학교, 학원, 수학 숙제, 줄넘기 학원 같은 학생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강요나 전달이 주로 있기에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니 자연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될  있는 곳은 어쩌면 책을 읽는 순간과 이렇게 글을   있는 시간과 장소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가족이나 회사 동료  누구와도 접점이 나오지 않으면서, 누군가와는 소통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 쓰고 있는 생각의 타래 같은 것이다. 주변에 당장 그걸 받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외로운 상황이라고 하기는 어렵. 이야기마다 적절한 독자(또는 청자) 있을 뿐이다. 12 아들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한들 공감하겠는가? 옆자리 동료에게 가정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털어놓을 이유는 없다.


사실 말하는 사람이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다. 글을 써내려 가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발전하고 삶을 다시 돌아본다.


그럼에도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빠' 있듯이 누군가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사소한 것이지만 글을  읽었다고 남기는 좋아요나 댓글의 힘을 입어 글을 쓰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조심스레  공간에 털어놓는 이야기의 시간이 소중한 이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  얘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욕망으로 가득  있기에 열심히 분투하듯 글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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