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어렵다고 느껴져서요.
오늘 브런치에서 글감에 대한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시작된 생각입니다.
나름대로 숨 가쁘게 연구직 직장인에 대한 애환을 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고요. 회사 생활에 뭐 그리 맺힌 게 많았는지.. 읽는 책의 한 줄 한 줄, 만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겪었던 일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게 제 글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글에 가끔 연구직으로 일하면서 고민을 남겨주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혼자 으쌰 으쌰 힘을 내었습니다.
출간 이후엔 약간의 공허함과 의무감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책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인데 어쨌든 출간으로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손을 털고 일어나고 싶은 생각과 함께, 연구직 직장인을 대변하는 글을 계속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이 있었나 봅니다. 자유롭게 쓰겠다는 처음의 의도와 달리 어떤 틀을 제 안에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압박에 이제는 기억이 가물거리는 과거의 모든 일까지 다 끄집어내서 연구직이란 이런 거야, 이런 고민을 하고 살아 라는 글감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요.
그런 상황이 되니 해당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데 흥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쓸 것이 없더라도 계속 쓰는 훈련을 놓지 말라는 말도 있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도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꾸역꾸역 글은 써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슬럼프인가 매너리즘인가 헷갈리기도 하고요.
슬럼프에 더 기름을 끼얹은 것은 글에 대한 자신감 상실인데, 그 까닭이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적지 않은 구독자를 가졌습니다. 5천 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지만 글에 대한 조회수는 뭐 안쓰러운 수준입니다 (브런치 구독자 수에 대해 믿음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하긴 그 원인 제공이 내 글에 있기도 하지만 말이죠).
조회수도 낮은데 더해서 가끔은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노출되었던 행운도 최근 들어 사라져 버리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쓰는 글의 이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그냥 책 홍보를 위한 억지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어쨌든 글을 써서 포스팅하면 누군가에게 한 번은 더 노출이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노출의 정점은 <브런치 북>을 통해서였습니다. 출간 서적과 동일한 제목의 브런치 북을 만들었는데, 브런치 북을 만드니 메인에 노출이 아주 잘 되더라고요. 왠지 책도 잘 팔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조회수와 노출 빈도에 집착이 생겨버렸습니다. 브런치 북의 수혜를 한 일주일 정도 얻은 뒤로 조회수는 뚝 떨어져 원래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연예인들이 왜 그런 거 있다잖아요. 무대의 화려함을 못 잊어서,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서 자꾸 미디어에 나오고 싶어 한다는 그거. 제 마음이 딱 그렇더라고요.
게다가 좋은 글을 보면 와,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다가도, 그냥 그런데..? 이게 왜 선택된 거지 싶은 글이 메인에 떡하니 올라오면 괜한 질투와 상대적 박탈감도 느꼈습니다. 내 글이 더 좋은데, 왜 알아봐 주지 못하나.. 그러니 더 글을 써서 올려야 한다는 집착.
사람 생각이 별 것 아닌 일에 치졸해 지기 참 쉽더군요.
매번 제 글에 라이킷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피드백에 진정 감사하고 글을 쓰는 힘이 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딘가 갇혀버린 듯한 마음과 조바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바심 때문에 하루에도 몇 개의 글을 막 올리고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어요. 계속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마음인 겁니다. 아직 정신 수양이 덜 된 것 같아요.
한계를 느끼면서도 반대급부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다. 지금도 노션의 노트에는 몇 개의 초고가 잠자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정말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써야 된다는 강박에 탄생한 글인지, 그래서 그 안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의심이 들기에 당분간은 좀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00개의 글을 쓰면 자축하고 싶었는데... 잠시 숨을 고를 때가 되었나 봅니다.
조회수나 라이킷, 댓글에 대한 욕심을 좀 버릴 때가 되어야 글을 다시 올릴 수 있지 싶어요. 집착을 버리고 더 진솔해질 수 있을 때 다시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