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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이 내게 가르쳐 준 것

by nay

얼마 전 스페이스X가 발사되어 ISS(국제 우주 정거장)에 도킹하는 것을 보았다. 국가 주도의 우주 개발이 어느 새 민간 우주 시대로 넘어갔다. 스페이스X의 로켓들이 회수될 때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멋지게 땅에 내려앉는 모습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실이 되다니. 게다가 착륙 장면은 봐도봐도 참으로 우아하다. 공학 기술은 진심 나를 놀라게 만든다 (나를 놀라게 하는 또 하나: 건축기술.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있게 하고,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것에 경외감을 갖는다). 이러다 정말 엘론 머스크의 꿈처럼 화성에서 사는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들의 사회를 건설하고 높디 높은 건물을 뚝딱뚝닥 지어버리는, 그리고 멀리 우주로 신호를 보내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찾고 있는 인간이란 생명체의 능력은 대체 어디가 한계인지.


spacex.gif 우아한 착륙. 더 멋진 표현이 있을까


우주에 대한 생각은 주로 호기심만 가득한 아이의 시선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과학동아를 열심히 구독했다. 특히 좋아하던 섹션은 우주 여행,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른 우주 시간 여행의 쌍둥이 패러독스 같은 주제는 흥미로워서 읽고 또 읽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나온 각종 은하의 모습에 정말 이렇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그럼에도 우주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게 되지 않았다. 더 자세히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리나 수학이라는 학문이 어려워서 그랬나 보다. 어렸어도 현실 감각은 높았던 모양이다. 참 빠른 포기였다.

각설하고 어쩌면 우주라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시작은 어렸을 적 읽었던 '사차원의 세계'에서 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우주만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한동안 우주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 있어도 날씨만 살피는 게 전부였다. 오늘은 달이 밝군, 비가 오려나 이 정도의 느낌일 뿐이었다. 과학동아를 열심히 보면서 우주를 동경하던 소년의 모습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우주를 잊고 지내던 현실의 내가 다시 각성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발단은 아주 단순했다. 그것은 바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아래의 사진 한 장.

SSI_20141030112946_V.jpg 왼쪽 끝이 지구, 오른쪽 끝이 달.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그 사이에 놓일 수 있다.


목성도 엄청 크고 (지구 부피의 1,300배!) 토성도 그러할진데, 그렇다면 대체 지구와 달은 얼마나 먼 거리란 말인가! 그런데도 눈으로 보이는 달은 어쩜 저렇게 크게 보이는가. 저 멀리 있는 달의 인력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긴다니 말이 되나 (역으로 달은 지구의 인력에 끌려 어디로 가지 못한다). 슈퍼문이라고 불리는 때가 되면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달. 달을 생각하면 늑대인간이나 Lunatic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의 인류에게 밤에 크기가 줄었다 커졌다 보이는 존재는 당연히 경이롭고 신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 미치광이를 만드는 존재처럼 보였을 것에 동의한다.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1970년대에 어떻게 인간은 저 먼 거리를 날아서 달에 갔고, 거기에 발을 디뎠을까. 인간의 기술과 도전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에 놀라다가도, 광활한 거리를 외롭게 날아갔을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이 어떤 감정으로 우주 여행을 했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지구인의 우주 정복 여행의 희생자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몇년 전 서호주의 시골에서 보았던 쏟아지는 별들이 기억난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야경에 익숙해져 있다가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놀라움도 잠시일 뿐, 말 그대로 '쏟아질 듯' 보이는 별들의 향연은 오히려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사진기를 가져가 별 사진을 찍겠다고 했지만 사실 내 마음 속에 별들의 흔적을 담아 두고 싶어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DSC05928.jpeg 부족한 사진 실력의 한계와 구름이 조금 끼었던 날씨의 방해. 맨 눈으로 본 하늘은 이것보다 훨씬 더 멋졌다.


문득 우주에 떠있는 헤아릴 수 없는 별들 사이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경건함을 느꼈다.

지금 밝게 빛나는 저 빛이 언제 시작해서 이제서야 내 눈에 보이게 된 것일까. 어쩌면 저 별은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린 존재는 아닐런지. 엄청난 시간과 공간을 날아 지구에 있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하나의 밝은 점으로 빛나는 행성의 의미는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사색에 잠기도록 만드는가.


어느 순간부터 밤 하늘을 올려다 볼 때면 내가 한없이 작고 힘 없는 미물임을 알게 된다.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도 본다.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정말 '천문학적' 숫자의 별들 속에 지구라는 별, 그 지구에 사는 지구인들 70억명 속의 하나인 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별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잠깐 살다가 가는 인생.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의 시간일 뿐.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를 붙잡고 괴롭히는 고민, 욕심들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또한 찰나의 시간이 그저 후회와 반성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단련하고 풍성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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