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멀리 있는 건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빗줄기다.
집 안에서, 특히 밤에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비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듣는 것이 더 좋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아무 상관없는 세상으로 분리되어, 집 안은 고요하고 비 오는 소리만 가득하다.
이럴 때는 부슬비 보다 소나기가 더 바람직하다. 특히 그 소리가 세차서 좋다.
가끔 바람 때문에 툭툭 창 틀을 건드리는 소리나, 사르륵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창문을 훑고 가는 소리는 마치 아름다운 연주 중의 변주처럼 들린다.
한밤 중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럴 때 빗소리를 들으면 아, 비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편하게 누워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빗소리를 듣는 상황의 안전함을 즐긴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즐기고 싶을 때 스콜처럼 잠깐 내리고 금방 그치면 못내 아쉽다. 더 내려야 하는데, 왜 벌써 그치나 한다. 밤에 내리는 비 다음으로 좋은 것은 비 오는 주말 아침이다. 막 잠에서 깨어 보송한 기분을 즐기면서 바깥 날씨를 즐길 수 있다. 외출 계획이 없는 주말 아침,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 좋다.
빗소리는 저주파 백색소음 중의 하나인데 ASMR로도 많이 쓰인다. 유튜브에 보면 몇 시간씩 재생되는 빗소리 재생 영상도 있다. 공부하거나 집중력을 요하는 때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고 일하라는 것이다. 빗소리, 바람소리는 긴장을 낮추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구글링을 해보면 마음의 휴식, 마음에 평화를 주는 빗소리 파일이나 영상이 많다. 내가 느끼는 안심감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싶다.
반대로 비 오는 평일 아침은 정말 싫다. 솔직히 회사 가기 싫을 정도다. 바지가 젖고 신발이 젖어 축축한 상태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기분은 진짜 별로다. 그러니까 나의 빗소리 사랑은 몸과 마음의 안전과 평화가 담보될 때만 발생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편애다.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문득 어머니 생각을 한다.
비 오는 날 침대 위에서 마음 어느 한편에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있는 상황이 어쩐 일인지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였다. 평소 그 정도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빗소리의 마법은 40대 무뚝뚝한 아재를 갑자기 효심 깊은 아들로 바꿔주기도 하나보다.
방금 전 페이스북에서 누군가의 아버지 상에 대한 글을 읽어서 일까.
잠시 상념에 빠져 지금 이 순간을 아무도 건드리지 말아줬으면 하는 감상에 젖어들었다.
아들 녀석이 안방에 조금 늦게 들어왔으면 하는, 그런 바람.
다행히 아들은 적당한 시간에 들어와 잠시 가라앉았던 기분을 환기시켰다.
빗소리가 인도했던 성찰의 시간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유의 밤편지가 어울리는 오늘 밤
오늘 밤은 조금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