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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07. 2020

직무 읽어주는 사람

브런치에 글을 오랫동안 써 오면서 몇 번의 제안을 받았다. 강연 제안을 제일 받고 싶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출간하고 2건의 강연 제안이 있었다 (하나는 과학고 학생들에게, 하나는 업계 사람들 대상).

멘토링 관련된 제안도 은근히 있었다. 취업이 워낙 어려운 시절이기도 하고, 경력직 신입을 선호하는 추세도 있다 보니 간접적으로 취업 관련 분야를 알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지 않나 싶다. 패기와 열정,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신입 채용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그러니 취준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비즈니스 세계가 생긴다. 남들보다 업무 경력이 조금이라도 갖춰진, 또는 역량을 준비한 인재가 되길 바라는 니즈를 채워주는 서비스 말이다.

이러한 멘토링 제안이 흥미로우면서도 '취업 선배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영역이 꿈틀대고 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강연과 멘토링 모두 고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몸이 해외에 있어서였다. 직접 만나서 미팅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한두 달 전, 다른 제안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이것도 일종의 멘토링 개념이긴 한데 개개인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었다. 대신 내 이야기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서비스라고 한다. 비디오의 시대에 웬 오디오냐 싶었다. 그런데 오디오북은 오래전부터 (영미권에서는) 잘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시장을 넓히는 추세다. 책 읽어주는 시장이 크고 있다. 오디오의 장점은 들으면서 약간 딴짓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안전하게 활용 가능한 것은 오디오가 맞다. 비록 책은 아니지만 나도 경제 뉴스와 정보를 접하기 위해 정보성 팟캐스트를 거의 매일 듣는다. 운동할 때 듣기 딱 좋다.

게다가 직접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서 진행을 한다고 했다.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매끄러운 성우의 멋진 목소리가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진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생생한 전달일 것이다.


하나 이것도 역시 직접 녹음할 수는 없어서 힘들겠다 하니, 대신 다른 사람이 녹음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내 동의가 필요하다. 반드시 내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란 판단에 일단 질문지라도 좀 보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질문지가 날아왔는데..

질문의 양과 내용이 상당하다. 질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답할까 생각해 보다가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고 구입을 해서 내용에 대한 만족도가 낮으면 안 되니, 당연히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친절하게 답을 하자니 기회비용에 비해 작성자인 내가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낮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대충 계산을 해보니 더더욱 현실 자각이 되었다.


그러나 끝내 수락했다. 지루한 과정이었지만 며칠에 걸쳐 답을 달았다.

투자 대비 비용이라는 관점에서는 크게 득 될 일이 없게 느껴짐에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어떻게든 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기 전공을 회사에서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모르는 익명의 이공계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약간의 사명감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애초에 책을 썼던 마음과 의도도 그랬다. 답을 하는 시간이 사실 꽤 괴로웠는데, 말로 하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글로 하나하나 쓰는 것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만약 인터뷰를 하면서 답을 하면 쉽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지를 보내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뭘 더 고치거나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없다. 무척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고마웠다는 담당 매니저의 전언에 '그럼 그렇지~'하는 약간의 뿌듯함이 있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비즈니스의 영역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고 어떻게 커나갈지 성장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비즈니스 초기라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디 잘 되기를 (+내 업무에 대한 판매도 잘 되어서 용돈 벌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주 현실적인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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