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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21. 2020

승진 이야기 (aka 욕심과 미련)

회사의 직급 체계가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인 경우도 있고, 내용과 이름 다 바뀌기도 한다. 바뀌지 않는 것은 일반 직원들 위에 팀장, 팀장 위에 소장 (필자의 근무지는 연구소인데 소장부터 임원급에 해당한다), 소장 위에 원장의 구조라는 피라미드이다. 팀장 숫자가 정확하지 않은데 대략 20-30명 사이, 소장은 6명, 원장은 1명 이렇게 구성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좁아지는 법.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제한된다. 


팀장 자리에 욕심이 있(었)다. 현재형과 과거형이 섞인 이유는 아직도 갈팡질팡 했던 터다. 직급이 아니라 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알고 있으면서도 자리 욕심, 완장 한 번 차보고 싶은 생각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팀장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워라밸이 아름답지 않음을 알지만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그러하므로) 마음 한 편엔 미련이란 것이 있다. 엄청난 성과는 아닐지라도 자칭 타칭 일 잘하는 사람으로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번은 팀장 자리가 오랜만에 공석으로 나왔다. 부서가 조금 달라서 그 자리는 내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누가 괜히 옆에서 찌르는 것이다. 그 선배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높으신 분에게 나를 추천해 줄 터이니, 너는 모른 척 있으면 되고 혹시라도 부르면 어떻게 팀을 운영할지 미리 생각해 두란 조언(?)도 붙였다 (뭐지? 나중에 팀장되면 자기 덕이라고 하고 싶은건가?)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섰지만 이미 마음 속에 파장은 크게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팀장이 되지 못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의지가 꺾이고 한동안 혼자 마음 고생을 했던 적이 있다.


욕심과 미련이 남는 이유는 손만 뻗으면 이처럼 닿을 듯한 거리에 내가 앉을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바라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항상 한 발 늦었다.


이렇게 잘 났는데 나를 알아봐주는 상사가 없어서 억울한가? 그렇다면 사람 보는 눈 없는 상사를 탓하지만 말고 어쩌면 당신의 능력, 그리고 능력에 대한 인정이 거기까지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와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데 잘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내 눈(기준)에만 그런 것이다. 


상사는 자신의 쓰임새에 필요한 사람을 등용한다. 자신이 등용되고 있지 않다면 상사 및 조직의 성향, 현재 회사의 상황과 전략적인 필요에 적합한 인물이 맞는가라는 전혀 다른 질문에서 답을 찾아보자. 상사가 바라보는 당신의 능력 또한 그렇게 판단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잘 따라줄 것 같은 사람, 내가 하는 말에 토 달지 않고 묵묵히 실행해 줄 사람을 더 반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게 좋은 상사가 맞냐고? 어차피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고, 비슷한 능력의 후보자가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직장 생활의 사춘기였는지도 모를 그 폭풍 같은 시간의 끝에 나는 해외 근무를 시작했다. 본진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심리적인 부분도 많이 정리되어 다행이다. 


얼마 전 나를 좀 많이 좋아하고 챙겨주는 누군가가 톡을 걸어왔다.

주재원에서 한국으로 복귀할 때 포지션에 욕심 좀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이 고맙지만 멍석을 깔아주려고 해도 잘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수차례 경험해 보니, 회사에서 인사/승진/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실은 오래 전 읽은 글 (운빨, 실력빨)로 인해 승진에 목마른 자신을 돌아보고,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기 위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운빨을 실력빨로 만들 수 있게, 나중에 정말 승진(또는 이직)해도 부끄럽지 않게 실력을 잘 쌓아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얼마 전 김호 작가의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를 다 읽었다. 나의 욕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읽을수록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참 좋은 기회다. 덕분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결국 두 가지의 마음이 충돌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

실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즉, 남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다.


-내가 보는 나

현재 또는 예전의 팀장들보다 못하지 않다, 혹은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즉,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팀장이나 임원이 된다는 것이 직장 생활의 성공 척도가 되는 것은 아마도 몇 자리 없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다. 직급=능력 (정치적이든 업무적이든)이라는 편향된 생각. 그런 잣대를 기준으로 두니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싫은 것이다. 아니 자존심이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마음이 한결 달라진다. 어차피 미래의 나를 결정해 주는 것은 회사의 직급이 아니라 어떤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의 일을 만들어 낸는 사람인지다. 현재 다니는 회사의 이름표를 떼고, 현직의 직급이 없을 때 <나>의 본질과 경쟁력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계발해 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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