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상을 준비하면서 물통에 물이 조금 부족해서 컵에 반 정도만 따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늘 한가득 채우는 편이라, 먹다가 아무래도 냉장고에 한 번 가야겠군 싶었다. 웬걸, 오히려 컵 바닥에 물을 조금 남긴 채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예전에 살던 전셋집이 50평대였다. 일부러 큰 집을 고른 건 아니었고 어쩌다 상황이 그리 되었다. 방이 무려 5개. 나중에 이사하려고 보니 쓰지도 않는, 버리거나 기부해야 할 것들이 한 짐 가득이었다. 집이 크고 공간이 많으니 나도 모르게 짐을 채워 넣어두었었나 보다. 어딘가 넣어둘 공간이 있으면 쓸모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 보관부터 해 둔 모양이다. 평소 집에서 '버리기 대장'으로 되어 있음에도, 눈에 띄지 않게 어디 짱 박혀 있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사 나가면서 엄청 후회하고, 큰 집에 사는 것이 생각보다 위험하구나(?) 깨달음을 얻었었다.
싱가포르에 올 때 처음엔 1년만 살 줄 알고 최소한의 짐으로 몸을 움직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소파나 침대는 한국에 둔 채, 집주인이 제공하는 가구들로 어찌어찌 3년째 살고 있다. 특히 적응 초반 아내의 불만은 냉장고였다. 대형 냉장고만 써 버릇하다가 냉동칸이 작은 오래전 모델을 쓰려니 무척 답답했던 터다. 근데 이제는 작은 공간도 잘 찾아서 착착 정리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인 걱정은 이동수단이었다. 한국에서는 늘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데 여기는 차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뚜벅이 생활을 선택했다. 버스와 지하철이 자주 있고 워낙 작은 나라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쨌든 우려만큼 불편함이 없다. 있다가 없으면 불편한 게 자가용이라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 덕분에 자주 많이 걷게 되어 건강을 얻었다.
안분지족 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알고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으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파악하여
만족하며 살아간다.
공간과 재화에 제한이 있으면 생활의 방식이 거기에 맞춰진다.
평소보다 적게 따랐음에도 어쩌다 컵에 물이 남을 수 있었을까.
물이 가득 담겨 있으면 있으니까 일단 마시고 보자라는 행동을 했구나.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껴 마신다. 한 번은 테니스 치러 나갈 때 어쩌다 작은 병에 물을 담아 갔더니 아들 녀석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이리 물이 적냐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물의 양이 적긴 했어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만큼만 있으면 딱 거기에 맞게 소비하고 생활할 수 있다.
컵에 담긴 물 한잔 덕분에, 그동안 욕심으로 주변을 채우고 채운만큼 쓰기 바쁘지 않았나, 안분지족의 삶이 가능한데도 과한 욕망으로 세상살이를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