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복귀를 앞두고 현지 생활을 정리 중이다. 챙겨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그러나 무난하게 넘어가야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바로 핸드오버다 (예전에 핸드오버를 첫 경험하면서 쓴 글이 있다). 아무 탈 없이 잘 쓴다고 해도 지은 지 12-3년이 된 터라 그냥 잔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핸드오버할 때 괜히 보증금 떼이지 않으려면 고장 난 것들이 없도록 가능한 한 고치고 나가야 한다. 몇 달 동안 모아 놓은 수리 목록을 오늘 고치는 날이었다.
핸디맨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일종의 집안의 잡다한 고장 수리 전문가라고 할까. 일반적인 경험에 비추어 늦게 오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정확히 약속한 시간에 - 오히려 5분 일찍 - 그가 도착했다. 나이 든 핸디맨이 들어오고 뒤이어 얼굴이 허여 멀 건한 청년 하나가 따라왔다. 보조를 데리고 다니시는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참을 이것저것 고치는 중에 아내가 슬며시 묻는다.
"아들 같지? 어쩜.. 여기 애들은 참 착한 것 같아. 아빠 따라서 이렇게 주말에 일도 배우러 다니고"
"그러게"
"아까 보니 전등 떼어낸 것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닦는 거 보고 놀랬잖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결국 잠깐의 휴식 시간에 핸디맨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Is he your son?"
"No. He is my daughter's boy friend"
OMG.
아니, 딸의 남자 친구이었다니. 둘의 분위기가 아주 살갑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이렇게 주말에 여자 친구 아버지의 일을 돕는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사실 더 놀란 것은 그다음이다.
He is a cabin crew
응? 세상에, 싱가포르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란다. 스튜어드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항공사 직원은 맞다. 어쩐지 얼굴도 멀끔하고 이런(?) 일 하기에는 너무 하얀 피부였다니까!
청년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니 한국인이었던 자기 동료는 이미 한국에 돌아갔다고 하였다. 하긴 팬데믹 상황에서 항공편을 띄울 일이 극히 줄었으니 일자리가 없어진 터다. 한 때는 항공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이 청년, 그리고 이름 모를 한국인 직원, 그리고 또 누군가는 직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거나 아예 이 나라를 떠나 버린 것이다. 그들을 돌려보내고 항공사 직원이었다는 그의 뒷모습이 유독 눈에 밟힌다.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어느새 일 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팬데믹과 관련해서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같은 일을 겪고 나니 느낌이 다르다. 내 일자리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어딘가 마음이 좋지 않다. 핸디맨을 많이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배움이 적은 사람이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항공사의 직원이 집안 고장을 수리하는 일을 배우려고 따라다닌다는 이질적인 상황이 낯선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는 말을 전해만 들었지, 직접 이런 상황을 겪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한국인 동료는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세계의 모든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이 상황이 내년에는 제발 진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