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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29. 2020

멀티 페르소나를 허(許)하라

최근 동아 비즈니스 리뷰(DBR)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부캐의 역습'.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이 보여 준 다양한 캐릭터로의 변화는 '부캐'라는 말을 양산해 냈다. 유재석이라는 당대 최고의 연예인이 있지만 새로운 영역 - 예를 들어 가수 - 에서는 아무런 전력이 없기 때문에, 아예 유산슬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인격체를 만들어 내 버렸다. 누구나 유재석임을 알면서도 그가 옷을 갈아입고 마이크를 잡으면 유산슬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부캐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펭수는 펭귄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펭수 그 자체임을 증명해 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독한 세계관이 구축되어야 그 캐릭터의 가치가 살아난다.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캐릭터나 에피소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DBR에 실린 기사의 요지는 요즘의 소위 N 잡러 시대를 다룬 것이었다. 팀에서는 아직 서툰 막내 사원이지만 퇴근 후 운동 동아리에서는 적극적인 리더가 되는 시대다. 회사 안에는 아는 사람 몇 명 없고 존재감이 낮지만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유튜버일 수도 있다. 하나의 직장과 직업에서 사회적 성공과 보람을 찾던 시대의 종말인가? 다양한 형태의 페르소나 또는 부캐를 생산해 내며 사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 세대들은 직장에 헌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세대들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주장이다.


멀티 페르소나는 이중인격과는 다른 의미다. 이중인격의 대표적인 예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책에서 잘 다루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착해 보이고 세상 선한 사람이 알고 보니 희대의 살인마였다, 뭐 이런 얘기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멀티 페르소나는 다양한 환경에서 각각에 맞게 내 모습을 변화, 적응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심지어 이제는 myself가 아니라 myselves가 바람직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나만 봐도 회사에서는 다양한 사람들 이끄는 리더이면서, 집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들에게는 아빠라는 존재이고, 브런치에서는 글을 쓰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모든 캐릭터가 다 동일한 얼굴과 정체성을 갖기는 쉽지 않다.


11살짜리 아들이 있다. 이 친구는 밖에 나가면 정말 의젓하고 예의 바르며, 자기 할 일 딱딱 잘 챙겨서 한다.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반면 집에만 오면 아주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장난치고, 어른에게 (가끔) 대들고 자기 생각을 갖고 따박따박 대꾸한다. 한 번은 엄마가 아들에게 '학교에서 하듯 집에서도 행동하면 안 되겠니'하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어요.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을 했다길래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10대인 아이도 사회생활에서 자기 가면을 써야 하는 것인가.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변신해야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바깥에 나가 부모가 없을 때는 자신의 다른 단면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가 진정한 멀티 페르소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어쩌다 그리 되었나, 아직 아이인데 그냥 좀 더 마음 편하게 행동하면 어떨까 하는 부모로서 마음이 편치는 않다. 


조금 두서없이 멀티 페르소나라는 화두를 가지고 오랜만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었다. 

다시 원래의 화두로 돌아와 DBR의 기사 내용처럼, 이제는 N 잡러들에게 여유로운 시선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도 있다. 하긴 나도 예전에 같이 일하던 한 동료가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여러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그 에너지를 회사 일에 더 쏟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잘 해낸다면 부동산이든, 사진이든, 아니면 유튜브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싶다.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와 매체가 더 늘어나고 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집에서나마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시 학교에서는 반듯한 학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것처럼 이제는 N 잡러, 멀티 페르소나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해야, 그가 회사에서는 멋진 회사원으로서 활약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Warren W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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