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의 필요성

회사에서 쓰는 논문의 authorship에 대한 생각

by nay

회사에서 일을 하는 연구직으로 보람이 있는 경우는, '내 기술이 들어간 제품'이 출시되거나, '내 이름을 달고 나간 논문'이 있을 때였다. 나름 박사라는 학위를 달고 있으면서 그나마 자신할 수 있는 점은 연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대부분 학술학회에서의 발표나 논문을 통한 발표가 있다. 물론 유명한 연구대가들처럼 소위 CNS (Cell, Nature, Science)의 빅저널에 논문을 쓰지는 않는다 (솔직하게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다).


논문에는 필히 저자가 있다. 저자란 그 논문이 탄생할 수 있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논문을 발표하는데 기여 정도와 역할에 따라 제1저자, 제2저자, ... 그리고 마지막 교신저자가 있다. 흔히 제1저자는 논문의 대략적인 manuscript와 대부분의 실험 결과를 만들고, 교신저자는 논문의 내용을 다듬고 논리의 흐름들 잡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책임자로서 역할을 한다. 내가 아는 한 authorship에 대한 판단도 교신저자에게 있다. 만약 논문이 표절이나 거짓 결과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이는 제1저자 뿐 아니라 교신저자에게 큰 책임이 있다 (황우석 파문이 가장 잘 알려진 예다).

수 많은 저자들 중에 가장 의미를 두는 저자는 제1저자와 교신저자이다. 해당 논문의 1등 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회사일지라도 연구직에 있다보면 학술발표 뿐 아니라 논문을 종종 쓰게되는데, 저자 (authorship)에 대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누가 어느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견 차이가 생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이다 보니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간혹 얼굴을 붉히는 다툼과 논쟁, 어이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공동 1저자를 약속하고 다른 팀 사람과 논문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출판된 내용을 보니 나는 제2저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약속을 어기고 혼자 1저자를 가져간 것이다.


왜 그럴까?

규칙이 없어서 그렇다. 논문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그리고 논문에서 저자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러니 굳이 회사 차원에서 이에 대한 규칙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사, 승진, 연봉, 징계 등등 회사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에 많은 고민 끝에 세워진 규칙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논문 저자에 대해서는 규칙이 없으니 사람마다, 시대마다, 팀마다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한다. 가령 팀이라도 바뀔라치면 이름이 빠지거나 저자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한 때 정말 이 규칙을 제대로 세워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나만의 규칙을 갖고 논문을 쓸 때 저자를 올리곤 했는데, 가끔은 스스로도 그 규칙이 상황논리로 풀리는 경우를 마주치곤 했다. 그래서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유명 대학에서 논문 저자, authorship에 대한 규정을 스크랩하고 직속 상사에게 필요성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회사에서 원하는 '급하고 중요한' 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라.. 그만 흐지부지 되었다. 어쩌면 나도 이 사안을 그렇게 취급한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뭐 당장 문제는 안되니까. 처음엔 몰라서 안하고 나중에 알만하면 귀찮아서 안하는 악순환의 고리.


그 때 좀 더 노력해서 규칙을 만들 걸 그랬다. 조금은 불합리 할 수 있어도 규칙이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 낫다. 규칙이 있으면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질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긴다. 석사 때 처음으로 인건비라는 것을 받아보았는데 너무나도 액수가 적어서 황당해 하는 나에게, 선배의 말은 '일단 받기 시작해야 오를 수 있어'였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해서 적절한 운영 방침과 규칙을 꼭 유념해야 한다. 퇴사 전에는 꼭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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