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수 많은 사용자를 거느린 커뮤니티는 초 단위로 새로운 글이 올라오고, 모바일을 통해 가끔은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클라우드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돌아다닌다. 이렇게 빠른 시대의 변화와 흐름 속에 있다보니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도 여유를 갖긴 어렵다.
소통을 뜻하는 communication의 어원 상 본 뜻은 공유, 공감이라고 한다. 즉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일방적 정보의 전달이 아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피권력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중심적이다. 각자 자기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아이 때는 세상의 중심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그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된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임을, 삶의 방식임을 안다 (간혹 그걸 모르는 어른들도 있다만..).
특히 직장에서 피곤한 날은 더더욱 그렇다. 아이는 밥 먹으면서 딴 짓도 해야하고, 옷 갈아 입힐 때는 저 멀리 도망가기도 해야한다. 나쁜 의도는 없다. 그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은 기다리지 못한다. 어른이 사는 세상은 그런 것으로 느리적 거릴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소통 보다는 명령이 앞선다. 겉으로는 친절한 말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일방적 전달이 더 많다.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사자성어 '역지사지'란 말이 공자, 맹자 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니 사람들의 오랜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아이와 한 바탕 했다. 시작은 늘 별 것 아니다.
오늘 우연히 소통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마냥 내 입장과 관점에서 대하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함이 생겼다. 일곱살 아이에게 어른의 눈높이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참 이기적이고 가혹하다는 생각에 슬며시 부끄러워졌다. 오늘부터라도 아이와 제대로 된 소통 (공감)을 위해 퇴근 후엔 어른의 규칙을 조금 내려 놓을까 보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photovideoweb.co.uk/photo/phototips.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