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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24. 2021

배울 게 없다면 떠날 준비를.

HBR 기사에서 ‘지금 하는 일이 지루하다면 이직할 때’라는 영상을 시청했다. 내용은 훨씬 유익했다. 요점은 이렇다. 현재 하는 일이 익숙해져서 긴장감이 없다면 당신은 배움의 S곡선에서 정점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안정적이지만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것을 고민하라는 것. 극단적으로 커리어의 정점에서 잘하는 일을 못하게 되거나 회사를 떠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배움의 S 곡선에 대해 지극히 공감하게 된다. 처음 맡은 일은 모든 것이 낯설다. 입사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지만 회사 일은 다른 세계였다. 용어부터 시작해서 협업 부서와의 관계, 과거의 일 처리 방식, 상사가 기대하는 퍼포먼스, 동료가 기대하는 미래 등 많은 고려 요인이 놓여있었다. 문제가 발생해도 무엇이 요점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회의를 하면 수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데 정작 나만 동떨어진 사람처럼 있기도 했다. S곡선의 아래쪽에서는 문제 파악의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기에 스스로도 답답하다. 이번에 새로 맡은 업무에서 다시 느린 학습 속도를 경험했다. 즉 S곡선의 아래쪽에 있으니 17년 차의 경력이 무색하였다. 업무 특성상 회의가 많은데 내 실수로 괜한 잘못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면서 참석하는 경우 역시 다반사였다. 어떤 경우 아예 대놓고 ‘제가 아직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요’라며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보다는 솔직한 게 학습과 협업에 더 도움이 된다.


지난 몇 달의 시간 속에서 하는 일을 파악하게 되었다. 연구자로서 세부적인 기술의 전문성을 따지자면 실무를 담당하는 동료들보다 부족함이 많다. 필드의 짬은 그들이 낫다.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 얻은 지식과 인사이트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입사했을 때 했던 업무에서 배웠던 데이터/통계 분석 방법이 여전히 유효하고, 그것을 잘 모르는 후배들에게 알려주기도 하였다. 현업 적응이 어느 정도 되고 나니 S곡선에서 가파르게 기울기가 올라가는 단계가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지간한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뭘 해야 옳은 것인지 알만 하다. 하지만 짧은 경험에서 자만심은 독임을 잘 안다. 여전히 실수도 해서 긴장감이 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전체를 관리하는 면에서 전임자에 비해 아는 것이 아직 부족하다. 업무 만족도에서는 무엇보다 일의 재미가 있다. 새로운 생각도 많이 해보고 기존에 없던 것을 도입해 보고 싶은 욕심도 든다. 어쩌면 올해 말, 내년 사이에 퍼포먼스가 좋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배움의 곡선을 이렇게 단기적인 현업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길게는 현직 즉 커리어 개발 관점으로 확대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내던 시절은 회사라는 조직, 팀으로 일하는 것, 다른 조직과의 협업 등 수많은 상황을 몸으로 겪어가며 적응의 단계가 끝나고 찾아왔다. 주변을 둘러봐도 입사 후 처음부터 엄청난 성과를 보인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물러 보니 일하는 방식, 만나는 사람, 회사의 전반적인 문화 등이 주는 익숙함이 크다. 새로운 업무를 맡았지만 2-3 달이라는 기간에 빠른 적응이 가능했던 이유는 환경의 익숙함이 반 이상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과 도전의식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적당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한다. 나태하게 일한다는 뜻이 아니라 회사에서 기대하는 (경험으로 체득한) 어떤 ‘선’을 적절하게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S곡선의 정점, 즉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경력의 새로움을 찾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면 동영상의 주장처럼 떠나야 할까?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때가 떠날 시기라는 말은 다른 책에서도 이미 본 적 있다. 떠난다는 것이 반드시 이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부서의 일을 경험하기 위해 기존의 팀을 떠나는 도전이어도 좋다. 다시 배움의 첫 단계에서 고생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야가 넓어질 수 있음이다.


나는 여전히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배우는 것이 있는가? 답은 'Yes'. 다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경력의 누적이 주는 편안함을 벗어날 용기가 없다. 더 솔직한 답변은 조직에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어져도 지금의 위치와 연봉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이유로 이직을 하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다음 주에 조직장과의 미팅을 위해서 CV를 출력해 놓고 보니 여기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채운 내용이 많긴 하다. 빈칸에 무엇을 더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내 커리어는 결국 내가 관리하는 것이다. 일단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잡기 위해 지금 새로 맡은 일의 업무 기간을 설정해 두려고 한다. 내가 설정한 기간 안에 S곡선의 정점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목표)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안정과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다시 낯선 일을 찾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그때가 되면 이직의 시기와 가능성도 지금 생각하는 것과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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