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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ug 30. 2021

18년 차, 회사 생활에 사춘기가 왔다.

연구직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으로 브런치에 글을 수십 편 쓰고 책까지 출간했다. 그런 만큼 누군가 이 직군에 관심이 있다면 흔쾌히 알려줄 용의가 있다. 장점은 뭔지, 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취업을 생각한다면 어떤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것이 브런치 북 <연구직 회사원을 꿈꾸는 그대에게>이기도 하다.

18년 차, 국내 소비재 회사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충분히 시간과 경력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회의, 저런 미팅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업무 논의를 할수록 오히려 정체성이 더 혼란해짐을 느끼고 있다. 일을 하면서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떠날 날이 없어졌다.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직업에 대해 사춘기라도 온 것일까? 대체 왜?


얼마 전 상사와 내년 과제 얘기를 나누던 중 어떤 사안에 대해, '과학자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규정을 해보자는' 뜻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퍼뜩 깨달음이 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었구나! 느지막이 찾아온 직장인 사춘기의 원인을 찾은 것이 처음엔 내심 기뻤다. 


어떤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판정하거나 결정을 해야 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사적인 일의 경우 보통 판단 기준은 자신의 가치관이 된다. 도덕적 판단이든 양심이든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자신에게 확립된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취할지 말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한다.

회사의 일이라면 개인의 관점을 넘어서는 회사(원)의 입장이 우선이다. 내부 고발이 필요할 정도의 비도덕적 행위나 사건, 사회 통념이나 통상적 양심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결과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회사 또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함이 맞다. 회사는 그걸 위한 행동의 규칙을 제시하기도 한다.


학계에서 가설 검증에 대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판단의 기준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충분한 반복 실험, 통계적 처리가 가능한 n수의 확보, 검정을 통한 통계적 유의성의 확보 등이 필요하고, 어떤 변화가 있다면 단지 숫자의 관점이 아니라 변화의 폭이 생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우연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우연이 아닌 변화라면 실제로 의미를 둘 수 있는지 레퍼런스들을 통해 판단한다. 실험을 하고 결과를 해석할 때는 다분히 과학자의 양심과 기준이 발동하는 셈이다.

그러나 결과물의 활용을 고민할 때는 과학자보다는 회사원의 시선과 관점이 중요한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일들에 있어 과학은 간혹 내 주장을 위한 '수단'의 일부로서 의미가 있다. 그럴 때는 데이터가 기본을 잘 갖춘 경우, 결과 해석의 기준을 조금 넓게 가져가게 된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수준에서 볼 때는 2% 부족한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물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런 양립 불가능 조건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연구 파트에서 가진 내적 갈등의 원인이었다.


이 직업의 어려운 점은 과학자로서 일을 하는 방식이나 기준과 함께, 회사원으로 일을 대하는 태도와 업무, 판단의 기준이 양립해야 하는 것에 있었다. 그런 일들이 의외로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한 사람을 학자적 양심에 반하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너무 회사원스럽다는 핑계로 같은 연구직 동료에 대해 존중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도 '이렇게 일해도 되는거야?'와 같은 의구심을 갖도록 만드는 순간들이 생긴다.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해도 피하지 못한다. 결국 이 직업에 있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회사원으로 자리매김하든, 회사원의 타이틀로 과학을 버리든 내적 외적으로 챌린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뭐가 어렵지? 그냥 연구는 과학자답게, 일은 회사원답게 하면 되는 것 아냐?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막상 경험해 보니 연구를 할 땐 과학자가 되었다가 업무 회의에서는 회사원으로 스위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인드셋이라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 간단하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는데 익숙하다. 심리학에 있는 '일관성의 법칙'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그래야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데 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관성은 자신을 비롯해서 다른 동료들에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이야기를 할 때 혼란스럽지 않다.

주변에 연구는 과학자로, 일은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한 명 있다. 존경스러운 분이다. 물론 그분도 인간인지라 잘 관찰해 보니 가끔 일을 과학자스럽게, 연구를 회사원 입장에서 바라보는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마치 말 바꾸기 하는 사람인 양 오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더라만.


정답이 없는 문제라서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내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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