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전부 외주로 돌리자고요?"
"그래요. 그렇게 해야 연구원들은 더 가치 있는 연구를 하지"
연초에 1천 개가 넘는 소재의 라이브러리(도서관에 책을 모아둔 것처럼, 개발 소재를 하나로 모아둔 것)를 자체적으로 검토해서 결과를 얻겠다고 공언했는데, 상무님은 외부에 일을 맡기자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적지 않은 숫자의 라이브러리 규모였기에 함께 일하는 파트 사람들을 다독여가며 힘들겠지만 성과를 내보자고 독려했던 터였다. 올해 우리의 성과는 여기에 있다고, 그래서 여러 사람을 붙잡고 동기 부여를 했었는데. 아니 상무님, 그러면 제 면목은 어떻게 하나요?
이런 결과에 대해 제일 당황한 사람은 담당 연구원이었고 한동안 냉랭한 기운이 돌기도 했다. 나의 성과라고 여겨왔던 것을 갑자기 빼앗긴 기분이었을 것이다. 리더를 맡고 있던 나도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나의 일로만 생각하면 애초의 계획을 고수했어야 한다. 보통 '자기 성과', '내부 개발'의 목표로만 일을 해 온 습관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자원의 낭비이자 연구력의 분산일 수 있으니 옳은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과감한 결정이다. 상무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던 핵심은 연구원들이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지점에 있었다.
가치를 높이는 활동의 필요성
적지 않은 연구가 과제로 수행된다. 한 사람의 관심으로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여러 명이 달려들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것, 또는 단위 조직의 관심사가 되는 것까지 범위와 규모는 다양하다. 수년간의 노력을 들였지만 제품으로 탄생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화장품의 경우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은 안전성, 안정성, 단가, 효능 등이다. 마지막을 넘지 못한 기술과 제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을 해본 적은 없지만 좌절하는 연구원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어려운 산을 넘었음에도 막상 제품이나 소재가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제품의 연구개발 스토리만 골라서 여기에 소개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여곡절 없이 탄생하는 연구는 없다.
연구소의 일을 요약해 보자.
-기존에 없던 새로움을 찾는 과정
-새로운 것을 자체 기술로 셋업 하는 과정(또는 도입)
-셋업 된 내용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화
-시스템화 된 것에서 의미 있는 소재나 기술을 연결하는 과정
-찾아낸 소재와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 수 있게 공정화하는 노력
-안전하고 효과 있는 제품으로 탄생하도록 다양한 조건에서 최적의 처방을 만들어 내는 기술..
이 모든 것이 아무 문제없이 진행될 때 하나의 완성된 제품이 가능하다.
그뿐인가? 마켓이라는 전장에서 다른 회사, 브랜드와 싸울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 진지를 구축하는 제품과 브랜드가 될지, 적진에 돌격해서 대장을 잡는 수훈갑 제품이 될지, 아니면 몰래 침입해서 스나이퍼처럼 하나하나 제거하는 은근한 효자 상품이 될지.. 어떤 경우가 되었든 '유니크함'이 필요하다. 왜? 시장에는 수많은 제품이 서로 자기가 잘났다며 고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연구개발을 루틴 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그것도 매우 문제없이 매끄럽게),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옷을 입혀주는 것이 연구원의 진정한 미션이라고 하겠다. 제품마다 특별한 옷을 입는 것, 그것이 '가치'에 해당한다. 팔리는 제품은 남과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 연구자의 몫은 기술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서 현물(현실)에 적용하고, 차이로 인한 제품(결과물)의 특별함을 최종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비단 이것은 회사의 연구만이 아니라 대학 연구실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연 군계일학이 되어야 더 눈에 띄고, 결국 판매(학계의 인정)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 과정은 제목처럼 끝이 없이 모든 단계, 모든 과정에서 계속 되어야 한다. 연구개발(자)의 지속 가능함은 이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의 여부로 판정 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연구자로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열정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하루 8시간. 야근을 즐기는 사람은 없으니 일의 경중을 살피고 필요 없는 일은 줄이거나 없앤다. 더 좋은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계약을 맺고 외부 자원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렇게 확보한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가치 발굴'이라는 목표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