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동료와 1 대 1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동갑내기인 그 친구가 마련한 자리였다. 비싼 참치를 잔뜩 먹여놓고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기억나는 것은 딱 2가지. 하나는 자기랑 나랑 겹치는 분야가 아니니까 서로 협력하자는 내용(상당히 정치적인데?), 다른 하나는 왜 너는 능력의 70%만 쓰려고 하느냐는 - 내용인즉 지금보다 더 잘할 것 같은데 왜 그 모양으로 일하려고 하느냐는 것과 같은 뜻이었으니 - 일종의 문책과 꾸짖음 같은 것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역량과 능력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를 일이다. 동료로서 내심 안타까운 마음 더하기 불만인 마음을 토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어찌어찌하여 둘은 같은 팀을 벗어났고 그는 회사를 떠났으니 그가 꿈꾸었던 천하 양분 밀약은 없던 일이 된 셈이다. 그러나 70%의 능력 발휘는 두고두고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그마치 십 년은 족히 지난 일인데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니 무척 인상적인 이야기였음은 분명하다.
한 사람의 능력, 업무의 역량을 정량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수년간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난 아직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감히 내 짧은 식견으로 한 사람의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능력이 좋고 일머리도 있었지만 성격이나 조직 적합성 때문에 떠난 사람도 봤고, (이런 말 미안하지만) 위태위태 해 보이는데 회사 생활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도 봤다. ‘척 보면 알지’ 하는 무시무시한 투시 능력을 자랑했던 선배 역시 허무하게 회사를 떠나고 말았으니 솔직히 누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 투성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70%의 능력 발휘에 대한 해석을 곰곰이 해 보았다. 남들이 보기에 대충 또는 설렁설렁 일하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동기가 분명하고 필요한 상황에선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는 편입니다”만, 옆에서 보는 눈이 그렇다면 틀린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를 평가했던 과거 동료의 일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능력의 일부만 쓰는 사람일 수 있고, 때론 뺀질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전에 언급한 것처럼 누가 보기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를 관통하는 공통의 느낌은 '어딘가 좀 아쉬운' 모습 이리라. 그걸 풀어낸 방식이 30% 부족이라는 말이었지 싶다. 그렇다고 단언컨대 회사 일에 진정성이 없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힘을 주고 빼는 과정, 일 처리를 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 그의 말대로 정량적인 역량 측정이 가능하다면 - 70%의 활용에 문제를 두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갈수록 30%라는 빈틈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딴에는 회사에서 딴짓을 좀 해야 하지 않겠냐는 발칙한 상상도 한다. 내가 말하는 딴짓이란 업무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행위를 경계하자는 뜻이다. 최근 읽는 <Think Again>(애덤 그랜트)에서 강조하는 ‘다시 생각하기’는 결국 자꾸 반문해 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에 동감하며 자기 생각이 맞는지, 지금 일하는 방식과 과정, 의사 결정은 옳은지 다시 생각하려면 30%까지는 아니더라도 10, 20 정도의 여력을 일부러 빼 두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주장하련다. 그것이 예전에 읽었던 Slack의 미덕이기도 하고 말이다. 요즘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은데, 그럴수록 업의 본질에 대해 사고해 보게 된다. 잘 안되니까 일단 시도해 보는 것까지 좋지만 그러기 전에 진짜 필요한 일에 자원과 노력이 투여되는지 반성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스테미너가 그리 강하지 않은 관계로 난 맹렬하게 일을 몰아쳐서 진행할 수가 없다. 필요할 땐 밤늦게 퇴근도 해보고 주말에 출근도 했었다. 그저 라떼 스토리일 뿐, 내게 맞는 일 처리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열심히 보내다가도 한 10여 분 까무룩 낮잠을 잔다. 그래야 다시 충전되어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각자 자기가 가장 생산성 있게 일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아직 그걸 모른다면 진짜 고민해서 찾아야 한다.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과 제한된 자원 속에서 좋은 성과를 창출한다는 건 그저 ‘열심히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지식은 뒤쳐지기 마련이다. 지식과 기술의 참신성 대결은 어렵고, 오랜 경력에서 오는 지혜와 연륜을 구성원에게 전파하는 영향력을 발휘함이 옳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파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모든 일에 전력투구보다는 어떻게든 여유롭게 업무를 관리하자는 것이다. 모든 일에 진심인 것은 맞지만 진심의 크기를 알맞게 나눠줘야 한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