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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23. 2021

공동연구 계약의 팁

입사 4년 차에 팀장님의 명으로 시작한 외부 공동연구 관리 경험이 십 년 넘게 쌓였다. 업무 성격 상 주로 대학과 공동연구 계약을 추진했고, 주재원으로 있을 때는 업체, 학교 등을 상대로 하여 매년 2-3건 정도의 계약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 

회사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에서 학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연구자들과 네트워킹을 맺고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회사 동료가 외부와 연구 계약 때문에 고민이 있다길래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것도 모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몇 가지 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시작은 가볍게

가능하다면 NDA(비밀 유지 협약) 정도로 관계를 설정하고 가능성만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만남을 하다 보면 막연한 기대감에 차는 경우가 많다. 검토 단계에서 성사되지 않는 사례도 많으니 서로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본격적 계약으로 바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좋다. 호주의 어떤 스타트업과 NDA 계약 맺기부터 논의를 시작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우리 쪽에서 사인까지 다 하고 계약서를 넘기려는 때에 자신들이 펀딩 라운드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만약 처음부터 공동연구라는 본격적 계약 단계에서 상대측의 사정으로 갑자기 중단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비밀 유지 협약으로도 간단한 시료를 얻거나 가능성 테스트 정도는 충분히 진행해 볼 수 있다 (물론 상호 협의가 필수). 이런 경우가 제일 부담 없이 해볼 수 있는 단계다. 


공동연구는 대단히 구체적인 R&R 나누기와 상세한 계획을 설계할 것

공동연구를 ‘맡기면 되는 일’로 생각하는가? 내가 할 일은 전혀 없을까? 과제의 성격에 따라 회사의 input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말 그대로 '공동'의 연구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할 업무, 상대방이 맡을 업무를 철저하게 나누기 바란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양측의 input이 균등하게 요구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돈을 지불하는 쪽은 회사인데 오히려 내부 검증 단계에서 더 많은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이런 계약을 하나 했다가 한국에 있는 연구자의 불만을 듣기도 했다 (돈도 주고 보고서까지 써야한다고 말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파트너 연구자는 시료를 제공하고 회사는 평가를 하는 과제를 한 적이 있다. 상대측은 제공하는 시료에 비해 회사에게 너무 많은 검증을 요청해 와서 협의 과정이 의외로 길었던 사례가 생각난다. 이 연구는 좀 더 기억에 남는데, 양측이 서로 input을 들이는 일이니 현금 지급 없이 계약하는 것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계약을 하면서 배운 점은 서로의 니즈를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이 꽤 도움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실행 안이 나올수록 계약의 형태와 가능성, 기대하는 결과물의 수준을 현실적으로 예상하게 되니, 항상 detail을 생각하자. 


상대방의 기대 상태를 파악할 것+내 기대 사항도 구체화할 것

미팅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기업과 만나는 것만으로 펀딩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미팅에 갖는 부담이 없었다. 보통 회사는 흔히 말하는 ‘갑’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찔러보기식 미팅이 잦아지면 회사의 평판에도 문제가 된다. 지금 나와 공동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고객이 될 수 있고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팅 중에는 양쪽의 눈높이를 적당히 맞추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준비 과정으로 명확한 미팅 어젠다 세팅이 요구된다. 어젠다를 정리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이 현실화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상대에게는 적당한 공치사와 그들의 업적을 인정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절대 약속할 수 없는 것을 개런티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에게 요청하는 일을 내부에서 먼저 정리할 것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싶은 상태로 미팅에 나갔다가는 얼굴 붉힐 가능성이 높다. 회사 업무를 시작할 때 서로 소통 과정에서 해법을 찾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공동연구나 개발은 그렇게 해서는 곤란한 면이 많다. 내 과제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외주로 해결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것이 필요하고 부족한지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한국에서 공동연구를 전제로 만남을 가졌던 기억은 조금 편향된 편이었다. 상대측은 회사의 얘기를 성실히 듣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하는 형태였다. 주재원일 때 이런 마인드로 미팅 나갔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많이 당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너희(회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마인드였다.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하는지, 내가 만난 경험의 오류인지 알 수 없다.


마일스톤 관리 철저히 (계약서에 명시)

예전에 듣기로 삼O 같은 기업은 공동연구 시작하면 관리를 엄청나게 한다고 들었다. 교수님들은 그러는 거 싫어해요, 나는 방임 스타일이라서 안돼요, 알아서 잘하게 두는 게 좋은 것 아닌가요 이런 마음은 옳지 않다. 이상하게 분명히 돈을 지급하는 것도 회사고, 계약 상 ‘갑’의 위치에 있는 것도 회사인데 동등한 관계 설정이 잘 되지 않는 케이스가 빈번하다. 대학원생 시절 교수님들에게 굽신거리던 태도가 몸에 익어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고 갑질 하는 형태는 더더욱 해서는 안될 일이다만.

그러므로 계약서를 두루뭉술한 말로 적당히 하지 말 것, 계약서는 계약서고 실제는 다른 것, 이런 입장을 고수하지 말자(모 국회의원이 ‘공약은 어차피 지키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계약서는 말 그대로 약속이므로 상호 약속을 지킬 법적 의무가 주어진다. 분쟁이 생겼을 때 누가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가지게 되는지도 잘 따져야 할 것이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수준만큼 달성했는지, 진행 여부를 체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런 습관과 관리를 자기 업무에 적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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