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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14. 2021

내겐 너무 도도한 너, 글쓰기

요즘은 끝내지 못한 글이 너무너무 많다.

완성도에 대한 압박이 생겼다. 그냥 적당히 써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들이 앞선다. 논리적으로 잘 전개가 되었는지, 필요한 말만 잘 썼는지, 글 자체로서 매력은 있는지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한 적 없는데 괜히 그런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포스팅의 욕망에 사로 잡혀서 마구 쏟아내던 때를 벗어나니 슬럼프가 온 것인가. 다른 작가들의 끊임없는 글과 주제를 보며 부러움에 빠져 본다.


내가 쓴 글을 돌아보면 어느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빠르게 막힘 없이 쓱쓱 쳐내려 간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항상 글을 편하게 쓸 수 있는 상황이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메모를 하게 되었다. 갑자기 떠오른 핵심 아이디어와 (마음속에 콕 박힌) 문장이나 표현, 글로 전달하고 싶은 상황에 대해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채집해 두었다가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펼쳐보면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 어떤 기분이었지, 왜 그랬었지라는 감정의 흔적만이 안갯속에 떠다니는 물방울 마냥, 실체 없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해가 뜨면 서서히 걷히는 안개처럼 되지 않을까 싶어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간만 보내기 일쑤다. 글감을 놓쳐 버리지 않을까 겁나서 억지로 붙잡아 보려 한다. 그러나 맨 처음 생각이 시작된 순간의 느낌과 감정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렇게 남아 버린 이야기들은 몇 문장 또는 키워드만 남기고 사라진다. 한 번은 다시 열어서 글을 쓰자니 영 맛이 살지 않아서 초고라고 부를 수도 없는 몇 개의 글감들을 지워 버렸다.


그나마 노력해서 겨우 건져 올린 심상을 발전시키면 다행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마구 전개되던 생각들이 갑자기 막다른 길을 만난다. 더 이상 진전을 할 수 없다. 지난 몇 년 글을 써왔으니 그럴듯하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려는 마음가짐, 그걸 자판으로 쏟아내는 시간과 그때의 감정, 온 생각을 들여 적절한 표현과 단어를 뽑아내는 집중의 시간이 사라지고 나면 한껏 전개되던 글이 허무하게 멈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가급적 뇌 안에서 회오리가 불 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가능한 수준에서 글을 완성하는 것이 나란 사람에게 최적의 글쓰기 모드임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초고가 완벽할 리 없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월간 에세이에 투고하려고 글을 하나 썼었다. 딴에는 꽤 잘 썼는 걸, 이만하면 문제의식을 가진 괜찮은 글이야, 제법 전개가 좋았어,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한 일주일 지났으려나. 퇴고하려고 열어보니 세상 부끄러운 글이 거기 담겨 있었다. 자의식 과잉! 글을 수정했다. 그렇게 퇴고를 하고 또 며칠 뒤 다시 읽어보니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모르겠다. 한두 달 정도를 그리 고쳤음에도 부끄러운 끝내 투고를 하지 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에 닿았다. 초심자의 행운으로 책을 냈고 작가님 소리를 듣지만 정작 내 안의 성숙함은 충분한가.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글의 완성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고백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하다. 물론 지금 이 글도 쉼 없이 써내려 갔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쓰지 못할 것 같아서, 다음에 써야지 했다가는 이 감정을 놓칠 것 같아서 말이다. 적당히 기회를 봐서 잡으려 했다가는 떠나버리고 만다. 나를 후벼 파는 글쓰기는 이렇게나 도도하다. 밀당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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