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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19. 2022

너무 잘 자서 깨어버린 새벽의 일기.

글감을 찾아 헤매는 때가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혹시 니코틴 금단 현상이 이런 것일까 상상으로 체험해 본다. 며칠 동안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 또는 밀린 숙제를 끝내지 못한 채 다음 날을 준비하는 학생인 듯 조바심이 난다. 그럼에도 마땅한 글감이 마련되지 않으면 미련을 버리고 뇌를, 욕심을 방치해 둔다. 금단 현상은 줄어든다. 이렇게 글을 그만 쓰게 되는 것인가라는 불안한 마음 한 조각만 남겨둘 뿐이다. 대단한 작가가 아니니 절필한다고 아쉬워할 사람 누가 있으랴 싶다.


그럴 때 가장 좋은 처방을 이미 알고 있다. 남의 글을 보는 것이다. 브런치의 글을 읽거나 잠시 접어 두었던 책을 펼쳐 눈이 활자 사이를 누비다 보면 머리가 <말랑말랑> 해진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을 때 특히 그랬다. 체계화된 업무 처리 프로세스에 익숙해지고 오랜 시간 이과생 마인드의 분석적 사고로 굳은 사고 체계를 일부러 깨뜨릴 이유가 있다. 머릿속 어딘가에 WD-40을 뿌려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면 글을 짓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어 여기저기서 불꽃이 튄다. 소위 아하 모먼트가 발동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폭발은 한순간에 일어나 때로는 그 흔적을 찾기 조차 쉽지 않으니 글감이 나를 찾아와 주면 바쁘다고 무시하거나 다음 기회에라는 여유를 부려서는 곤란하다. 


억눌린 자아가 폭발하듯 글감이 터지는 시간이 있다.

너무 잘 자서 잠이 깨는 새벽 언제쯤. 


대체 몇 시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 번쩍 정신이 드는,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이 말똥말똥 떠지지는 않는다. 사실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아니 왜 내 소중한 잠이 여기서 잠시 멈추는 것인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특히 출근해야 하는 날 중간에 깨는 것은 죄악이다. 꿀맛 같은 잠의 댓가 치고는 가혹하다. 난 나의 잠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초 단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는 몸을 숨겼던 은밀한 그림자와 같다. 생각의 방향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어떤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통일시킬 수가 없다. 누군가 내 글에 달아주었던 댓글에 이렇게 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전에 보았던 누군가의 글에 동의하는 생각이 훅 치고 들어온다. 그러다 갑자기 회사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순식간에 한 문단 정도는 후다닥 작성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희열이 느껴진다.


자유분방한 글감의 파도에 취해서 무진장 행복해하고, 깨어나면 꼭 이걸 꺼내어 현실화시켜야지 했지만 정작 그러지 못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꿈을 깨기 전까지 생생했던 기억이 눈을 뜨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걸 잡아두고자 침대 옆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메모 앱을 켜는 순간, 자유롭게 뇌 속을 설치던 글감과 멋진 (멋지다고 느꼈던) 핵심 문장들은 흩어져 버린다. 흰색 메모앱의 배경 마냥 머리 속도 하얗게 리셋되는 것이다. 그나마 남은 몇 개의 기억을 더듬어 타자를 치다가 오타라도 나서 앞뒤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더더욱 날카로움은 사라진다. 글을 쓸 수 있다는 들뜬 감정은 차분해지고 남는 것은 몇 개의 의미 없는 단어들과 새벽에 깬 자신에 대한 원망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너무 잘 잔 새벽을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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