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 사원과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제 저도 적응하고 있어요"
회사 일에 적응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불합리함, 생각했던(기대했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맞춰가게 되었다는 뜻이었기에 그러면 안돼지, 이렇게 말 하면서도 선배이자 동료로서 부끄러운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었다.
이과생의 눈으로 배운 세계는 현상과 결과를 설명하는데 적합한 논리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좁은 시선이긴 했지만, 이유 없이 결과는 없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근거와 타당성이 확보 되어야 했다. 모르는 부분이나 밝히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남의 생각을 빌려오거나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진 상상을 통해서라도 이유가 만들어져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일들은 대단히 불합리하게, 대단히 비논리적으로, 상당히 억지스럽게 결정되고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리의 흐름이 맞지 않으면 결과물이 틀리거나 나빠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러가는 것을 보면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통해 배웠던 생각과 사고의 체계, 일하는 방식과 본질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틀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문제는 이게 아닌데 싶은 일임에도 구조적으로 이미 공고해 져서 나 하나의 노력만으로 판을 뒤집고 새롭게 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에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란 앞선 동료의 말마따나 '적응해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조직의 논리를 이해하고 구성원이 되는 것 말이다. 아주 크게 내 가치관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가야만 한다. 판단과 결정에 대한 기준의 영점 조정을 해 나가는 것, 그걸 다른 말로는 익숙해진다고 한다.
익숙해지면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있다.
-이 정도면 됐지
-이 정도로 끝내면 그만이지
-그냥 여기서는 이게 최선이지
-원래 그런거야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면 세상 쉬운 것이 회사 일이지 싶다.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해도 태생적인 구조의 결함을 가진 경우엔 혼자서 해결할 답이 없다. 그럼에도 명색이 연구자니까, 회사의 전략적 결정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연구'의 특정한 부분으로 관점을 좁혔을 때 절대 타협해서는 안될 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가끔 과거의 어떤 일들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었나 보다.
한 동료는 ‘우리는 솔루션을 찾아주는 사람들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래, 연구자로서 할 일은 문제를 내기 보다는 주어진 문제의 해결책, 솔루션을 찾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남들 모르게 혼자만 아는 솔루션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과의 타협이든, 조직간의 약속이든 상황 논리 따위(이미 정해진 일정이니, 위에서 시킨 일이니 같은 것)로 적당한 선에서 합의가 되었던 일들은 결국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명분을 찾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지 말지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후배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그를 힘들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힘들지만 더 높은 가능성에 베팅을 하고 실제로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자신을 정당화 할 명분과 이유를 찾아 쉽게 솔루션을 내지 말라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