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직 회사원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강연을 요청받아 진행했었다. 초청해 주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연비는 누군가의 경험과 경력을 사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끝에 강사료와 사람대접은 마트나 시장에서 사는 물건 값과는 다르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생각보다 강연비가 너무 적다며(본인이 직접 지불하시는 것이 아니므로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의견. 그 말씀에 동의한다.
강연을 한 시간 하더라도 딱 그만큼의 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며칠에 걸쳐 강연 자료를 만들고, 당일 약속된 장소로 왕복하면서 길에서 보내는 시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강연 시간을 보내는 것, 거기에 속한 모든 노력과 시간이 어쩌면 강연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퉁쳐서 담긴다.
강연비는 보통 강연자의 레벨(?)에 따라 편차가 크다. 나 같은 일개 평사원이 회사 소개를 해달라는 대학교 초청을 받아서 1-2시간 정도 강연해 보니 평균적으로 3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임원급이라면 조금 더 다를 것이다. 더 유명한 사회인, 셀럽, 유튜버 등은 아마 더 많은 돈을 받을 것이다. 왜 비쌀까? 그들이 받는 연봉이나 시급이 더 높아서? 그게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강연자로 모시는 기회를 잡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비용은 가장 계산하기 편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 즉 강연료로 책정된다. 언젠가 회사 내규를 본 적이 있는데 급에 따른 지불 기준이 아주 명확하게 있었다.
어떤 사람의 회사원으로서 가치를 대변해 주는 바로미터는 연봉이다. 시장에서 회사원의 5년, 10년, 15년의 가치가 얼마인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5년 차에도 연봉 1억이 넘을 수 있고 10년을 넘게 다녀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받기도 한다. 퇴직금으로 어떤 분은 50억을 받기도 하더라만. 종사하는 업종의 종류, 회사 매출의 규모, 성장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연봉에 영향을 준다. 회사에서 지불하는 월급/연봉이란 회사에 헌신한 노동력과 시간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물론 금액의 양적인 부분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동의하는 객관적 지표에서 괴리가 있다. 보통 받는 사람이 훨씬 서운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렇게 일을 했는데 고작 이거야!
세계적 투자가 워런 버핏과 점심 식사가 수십 억원이 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찾아보니 2019년 기사에 무려 42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점심식사 시간 이래 봤자 고작 두어 시간 일 듯한데 그걸 경매에 부쳐서 파는 것도 신기하고, 42억을 들여서 만날 수 있는 재력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무엇보다 그럴만한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누군가 지위가 높은 사람, 유명한 사람, 사회적 명망이 있는 사람 등을 선망하고 인생에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걸 돈으로 사고파는 현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자산의 가치, 경력과 경험의 가치를 어떻게 대우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돈으로 주는 보상 밖에는 없는 것일까. 인생과 경력이 가진 축적의 시간, 누적된 실전 경험을 돈으로 사는 것은 자본의 사회니까 당연한 것이리라. 몇 년 전 선배가 대신 강연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해서 들어준 적이 있다. 모교에서의 강연이라 더 기분 좋게 갔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강연비가 없었다. 저녁 7시부터 2시간이나 했는데 말이다. 선배와 담당 교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강연비를 받지 못한 경험이 내게 준 교훈이 있다. 금액을 떠나서 최소한의 거마비 정도는 챙겨주는 것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대우'의 의미라는 것. 강연자가 존중받았다는 느낌은 주도록 하자. 난 다시는 그 강의에 대타든 직접이든 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