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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에 대한 변명

by nay

애플 워치를 차고 다닌 지가 몇 해 째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그 달의 미션이 주어진다. 매일 운동하기 20분 이상, 한 달 칼로리 소비 13,000 이상, 일어서기 20회 이상 등등이 그것이다. 그걸 달성하면 잘했다고 도장 꽝 찍어주는 것처럼 메달(배지)을 준다. 올 해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것에 매료되어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배지를 차곡차곡 쌓았다. 매일 5km 이상 걷기라는 10월의 어려웠던 미션을 마치고 나니 매일 15분 이상 운동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워서 별 것 아니네, 이런 마음으로 11월을 시작했었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의외의 복병 때문에 모든 것이 흩트려졌다. 마흔 즈음부터 가끔 무릎에 염증이 생겨서 며칠 동안 걷기 어려운 지병이 있었다. 한동안 괜찮아서 별 문제없었는데 지난주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움직임에 제한이 생겼다.


저녁 회식을 하고 집에 와서도 목표를 위해 자전거를 탔던 나였기에 많이 속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를 못하면 가만히 서서 또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웨이트 운동을 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린애 마냥 무릎 부상을 핑계로 나 오늘 쉴래! 이렇게 자신을 놓아버렸다. 어딘가 아플 때 괜히 무리했다가는 더 아프거나 쉬이 낫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마음의 짐과 후속 부상(?)의 걱정을 벗어던진 것은 기뻤으나 루틴이 완전히 엉망이 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매일 15분 운동을 한 번 깨고 나니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 계속 쉬는 날이 연장되어 갔다. 반문해 본다. 운동이란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애플 워치가 내게 주는 '칭찬'을 바라기 위함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이에게 과자 하나 줄 테니, 게임 시간 더 줄 테니 공부해라, 이런 식의 꼬심과 별다를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루의 루틴을 깨버리니 매달 배지받기라는 미션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생겼다. 홀가분함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다. 달마다 미션 하지 않는다고, 배지받지 못했다고 괜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이 전반적인 건강함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궤변을 달고 싶어 진다. 손목에 달린 작은 액세서리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느끼느니 편하게 무시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자기 보호적인 이기심을 한껏 발휘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하기 싫은 것을 오랜 시간 참고 견디는 것이 자기 관리이다"

"나보다 성공적인 사람은, 나보다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나보다 많이 한 사람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던 박진영과 유재석의 대화이고, 두 번째는 일명 빨간 모자 영어 선생님으로 유명한 신용하 씨의 강연 내용에서 본 것이다. 오십의 나이에도 만족스러운 무대를 만들 욕심에 가혹한 루틴을 매일 한다는 박진영이 놀랍다. 참고 견디는 것의 힘, 싫지만 힘들여서 극복하려는 의지가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음에 아무도 이견이 없다. 경험에서 얻은 통찰의 한 마디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굳이 별로 힘든 일이 없던 날이라도 퇴근 후엔 그냥 지치는 것은 늘 연구 대상이다. 많은 회의와 이슈로 멘탈이 탈탈 털린 날이나, 그냥 자기 시간 충분히 가졌던 날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 집에 오면 눕고 싶다.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내서 책을 보고, 운동을 하고, 글쓰기를 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게다. 자기 관리 또는 성공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자신을 스스로 깨닫고 칭찬하는 것에 있다. 애플 워치가 도와주는 작은 넛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봐, 그러면 언젠가 달라진 너를 알게 될 거야'라는 메시지는 실제 건강함 뿐 아니라 하기 싫은 어떤 날들을 참고 견딘 자신의 지난 시간을 정신적으로 보상받는 것이기도 하다.


꾸준함이 필요한 건 그런 이유에서라고, 다리 부상을 핑계 삼아 소파에 드러누워 며칠을 허비한 자신을 오늘의 글로써 마음껏 힐난해 보기로 한다. 8개월의 꾸준한 자기 챙김을 망친 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냉정한 사실에 홀가분하다는 둥 정당화에 힘썼던 생각을 크게 반성해 보았다. 사실 변명 따위는 사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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