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 벌써 작년 말 - 회사 안에 아주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담당 연구원 중에 처음으로 정년 퇴직자가 나온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성대한 퇴임식을 할 수는 없었지만 조만간 그의 경력을 기리며 그의 이름을 딴 연구실을 지정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회사의 정년이 60세니까 그 선배는 딱 그 나이일 것이다. 60이라는 나이가 쉽게 와닿지도 않지만 나중에 퇴사 메일을 보고 27년을 회사에서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7년의 회사 생활. 가늠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내가 지금 18년 차니까 10여 년쯤 더 일하면 선배가 다닌 만큼을 채울 수 있다. 그렇지만 정년을 채울 수는 없다. 그러려면 추가 몇 년이 필요하다. 정년까지 일하는 건 고단한 과정이다.
혹자들은 임원이나 팀장이 되지 않고 저렇게 정년까지 다닌 선배가 롤모델이라고 말하였다. 담당 연구원들에게 있어 그는 때로 부러운 사람이었다. 때로는 하는 일보다 존재 자체가 의미 있는 경우가 있다. 개인이 회사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대단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한 편으로 나는 그의 맘을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한 때 팀장직을 했었으나 면직해야 했고 이후 담당 연구원으로 또 한참을 일한 분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이야 팀장이 영원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조직의 장을 맡았다가 다른 사람 밑에서 일을 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잘 아는 다른 선배의 말을 빌면 ‘그 양반 속이 얼마나 타들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정년퇴직이란 감동적인 문구 뒤에는 알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맡게 일을 해냈다. 사실 나는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무슨 일을 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 부서도 너무 다르고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같이 일 할 기회도 없었다. 젋은 연구원보다, 후배들보다 더 생산적인 성과를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선배를 ‘월급 루팡’ 따위로 매도하거나 험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구자로서 성실한 생활과 본보기가 되는 태도, 그리고 결과를 보여주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이와 연차가 많다고 무조건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배의 모습을 보며 연구자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을 해본다.
연구란 아는 것만을 반복하는 작업이기보다 아는 것에 새로운 것을 더하여 자신(의 기술)을 계속 진화, 발전시켜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회사 일이란 때론 관성적으로 눈치껏 적당히 해도 그럴듯하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회사의 연구자 또한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니 그동안 알아 왔던 것만에 기대지 않는 것, 후배들은 겁이 나서 쉽게 시도해 보지 못하는 것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등이 선배의 몫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는 특히 관행적인 업무 프로세스나 결과 지향적 의사 결정에 의식적인 반기를 들어 보려고 하였다. 과거 선배들의 잘못이 결국 현재의 우리에게 때로는 짐이 되어 불필요한 고민을 만드는 것을 바라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욕심을 내려놓으면 두려울 것이 없어지나 싶기도 하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면 가끔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다면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다. 그의 뒷모습이 안쓰럽고 외로워 보여 한 두 번 같이 식사를 하면 어떨까 망설인 적이 있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 혹시 내가 불편하실까 라는 핑계로 쉽디 쉬운 밥친구조차 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퇴사 후에 바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디 새로운 곳에서 승승장구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