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홍님의 ‘낳아준 엄마 vs. 키워준 엄마'라는 글을 보았다. 이 분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시작(창업)만큼 지속적인 운영과 참여(유지와 성장)가 중요하다. 글에서 저자는 초반의 아이디어만 반짝 내고 지분을 유지한 채 회사에 역할은 없는 케이스에 대해 투자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라는 특성상 대담한 시작이 의미 있지만 결국 누가 어떻게 공을 들여 키워가는가에 대한 부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낳아준' 보다는 ‘키워준' 사람들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 제안자와 성과를 마무리하는 담당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좋은 생각이 있더라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혁신을 이야기할 때, ‘누가 그 아이디어를 냈는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혁신은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는 편견이 강한 편이다. 물론 기존에 없던 번뜩이는 무엇이 혁신의 원천이 될 수는 있으나 과연 성과로 끝까지 연결될 수 있느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있어도 양산하는 것, 생산성을 맞추는 것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인 것과 같다. 이게 될까 싶은 아이디어를 꾸준한 노력을 통해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지루한 실패의 과정 보다,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라는 아이디어에 관심을 쏟는 것 같다.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은 여러 사람의 힘을 합쳐 하나의 성과를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다. 따라서 어떤 성과가 있을 때 누군가의 지분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 연결된 하나의 연속선 상에서 각자의 전문성으로 기여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 편, 명확하게 내 지분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선을 긋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어쭙잖게 모두 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관습적으로 지분을 부여하는 행태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특허를 낼 때 부서장(주로 연구소장)을 무조건 개발자에 넣어주었다. 조직 대표인 만큼 아랫사람들이 챙겨준다는 의미에서 시작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관행이 오래되다 보니 개발 내용에 정말 1도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 개발자가 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연말이 되면 특허 보상비를 현금으로 줬는데 (대략 15년 전에는) 연구소장님 이름으로 받아가는 두툼했던 봉투가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관행은 사라지고 정말 일에 참여한 사람들 중심으로 특허 개발자에 등록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다행이다.
낳아준 vs 키워준에 대한 것은 비단 기업의 연구개발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떤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심드렁하게 ‘아, 그거 나도 생각해 본 적 있었는데'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기 마련이라 전공자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비슷한 생각들을 나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과학은 가설(아이디어)을 적절한 실험과 데이터로 증명해 검증하는 작업이 핵심이므로 누가 더 노력해서 성취하는가로 실력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생각을 해볼 수는 있을지언정 증명하는 것은 새로운 영역이란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오늘도 멋진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기 위해 보모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연구원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