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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의 기록

by nay

집에 있다. 정확하게는 확진에 의한 격리생활이다. 바쁠 때면 그렇게 놀고 싶더니만 정작 시간이 날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된다. 서재에서 격리생활을 하기로 했을 땐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니터 들여다보는 것도 잠시 즐거울 뿐 괜히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멍하니 책장 앞에 앉아 있다가 눈높이에 딱 들어온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여덟 단어>. 예전에 잠깐 들춰 봤을 때 잘 맞지 않는 책이란 생각에 덮었는데 어떤 까닭인지 읽어 보기로 하였다. 첫 주제인 ‘자존’에 대한 얘기에서 문득 작년에 중고차 사던 생각이 났다.

몇 번의 방황을 거쳐 맘에 둔 차는 미니 클럽맨이었다. 중고를 염두에 뒀지만 마땅히 타 볼 기회가 없어서 신차로 가족과 시승까지 했다. 타보니 더더욱 만족스러웠으나 가족들의 반대. 반대의 이유는 나이에 맞지 않는다, 남자가 타기에 좀 그렇다. 내가 탈 차를 왜 여러분이 결정하느냐 항변했지만 결국 다른 차를 사야 했다. 지금도 거리에 다니는 클럽맨 모델을 보면 못내 아쉬움이 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있겠지만 박웅현 작가의 말마따나 판단과 결정의 기준을 나에게 두지 못하고 남에게 뒀던,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며 살아가는 40대 남자의 모습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비대면 진료라는 것을 처음 해 보았다. 앱에서 적당한 병원을 찾아 증상을 적는다. 접수가 되고 잠시 뒤에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존에 먹던 약의 처방전과 현재 증상을 비교해 가며 유선으로 잠시 통화를 하였다. 목 아픔과 가래, 코막힘에 대한 성분 중심으로 처방하겠다며 끊었다. 미리 등록해 둔 카드로 결제까지 끝내니 5000원. 이후 처방전은 제휴 약국으로 전달되고 약은 집까지 배달된다. 코나 목을 들여다보면서 직접 진단은 못하지만 어지간한 병에는 굳이 어렵게 시간 내서 병원을 찾고 검진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긴 기다림 끝에 의사와 만나는 시간이 고작 2-3분 정도 아니던가. 몸이 불편한 분들이 병원까지 오고 가는데 힘든 점 많은데 간단한 진료라면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회사에서도 조금씩 발생이 되긴 했지만 다들 안 걸리고 잘 지나고 있었기에, 확진 문자를 받았을 때 약간의 민망함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하필 전날 회의가 많아서 접촉자들이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변경된 수칙에 의하면 접종자의 경우 7일 후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래도 왠지 회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 같다. 다들 괜찮다고 말해주겠지만 나 같아도 좀 찜찜한 느낌이 생기지 않을까. 같이 밥 먹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 되겠고. 집에 갇혀 이런 생각을 하니 괜히 우울한 기분, 확진자 블루스가 생기는 기분이다. 동시에 확진 통지를 받은 친한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동지가 생겨서 뭔가 힘이 나기도 했다. 복귀하면 이 친구랑 당분간 밥도 먹고 으쌰 으쌰 하며 지내면 되지 싶구나 하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서재에 이불을 깔고 화장실 갈 때만 제외하곤 여기에서 생활하다 보니 결혼 전 기숙사 생활이 떠오른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기숙사 방이 얼마나 컸겠는가. 별다른 동선이랄 것이 없던 그곳. 몇 발자국만 떼면 모든 것이 손에 닿는 곳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아파트에 들어가니, 물이라도 마시려면 부엌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경험이 신선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었다. 하루 종일 작은 방에서 꾸물대며 지내고 있다 보니 나름대로 포근함이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가족과의 복작거림이 없어 쓸쓸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합법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에 즐거워하는 이율배반적인 나. 하지만 가끔 들리는 와이프는 대뜸 그 방에서 아저씨 냄새난다며 놀려 댄다. 흥! 아저씨인데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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