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절을 보내는 풍경.

by nay

우리 집은 양력 1월 1일을 새해로 쇤다. 예전에는 양력 1월 1일에도 이틀 정도 휴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을 쓰려다가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니 양력 새해에 대해서는 일제에 의한 강압의 역사 또한 있다고 한다. 음력설을 금지하고 ‘구정舊正’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없애겠다는 의도였다는 이야기를 찾았다. 이후에도 이중과세(명절을 두 번 보냄)라는 지적 등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다가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부활을 했고, 1989년에 비로소 ‘설날’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다시 찾았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알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설날을 가족들이 모이는 중요한 명절로 보낸다. 양력 설은 사실 상 하루만 쉬어서 가족들의 모임에 부담이 되기도 할뿐더러 정서적으로 여전히 음력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중과세라고 하지만 직장인 입장에서 어쨌든 공짜 휴일이 생기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양력설을 지냈는데 이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빌면, 온 세계가 양력을 쓰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맞게 신년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 경험의 축적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음력 설날에 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그렇게 낯설다. 이미 한 달 전에 했던 새해 인사를 반복하는 것이 영 어색한 까닭이다.


양력설을 보내는 집안 풍습에 제일 신나 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다. 양력설의 휴일은 짧고 음력설의 그것은 길어서 어디 놀러 가기 좋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가만히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그녀 덕분에 설 연휴에 여기저기 잘 놀러 다녔었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중화 문화권에서는 Chinese New Year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을 보낸다. 해외 생활할 때도 부지런한 그녀 덕분에 좋은 여행지를 다녀오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꿈도 꾸지 못하다가 이번에 어찌 기회를 봐서 스키장을 찾았다.


명절 당일 오전에는 한산하던 스키장이 오후가 되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어딘가 낯설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득하다. 수많은 동남아 계열의 단체 관광객들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스키장에서 그들을 만난 적이 있긴 했다. 아무래도 눈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 일부러 스키장으로 눈 구경 오는 것을 과거에 보았던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백 여명의 외국인이 단체로 왔다고 하였다. 아이고, 이 사람들 때문에 오후에는 스키 타기 어렵겠다 싶었는데 웬걸, 별 영향이 없었다. 대부분 옷을 대여해서 입고 스키나 보드 또한 빌렸지만 슬로프를 타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눈밭에서 그들끼리 함께 놀고 웃고 사진을 찍는 등 기념을 하는 것이었다. 보드를 눈썰매 마냥 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거나, 어설프게 스키를 타려다가 꽈당 넘어지면서도 깔깔 거리는 모습이 정말 눈 구경 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타국에서 어렵게 돈을 버는 입장에서 그 나라의 큰 명절과 긴 연휴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그들에겐 스키장 방문이 새로운 경험과 명절을 보내는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더구나 코로나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진 지금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몇 번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니 북적이던 아래가 한산하다. 한두 시간 열심히 즐기다가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직장인의 비애가 극대화되는 지점은 항상 출근 전날 오후 9시 정도 아니었던가. 글을 쓰다가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오후 8:54를 가리킨다. 소름!! 몸이 기억하는 시계인가 싶다. 그럼에도 돌아가서 일할 자리와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본다. 연휴가 길었던 만큼 일상으로 복귀 또한 아쉽지만 일상이 있기에 휴일이, 명절이 더 빛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은 아재의 자기 위안적 잡설은 이걸로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망했던 첫 데이트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