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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포스터였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에 대하여.

by nay

어몽어스라는 게임이 한때 유행했다. 일종의 온라인 마피아 게임인데 여기에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임포스터이다. 일반인 사이에 끼어있는 가면을 쓴 사람으로, 이 게임의 빌런이다.

리사 손 작가의 책 제목인 임포스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도 임포스터는 가면을 쓴 캐릭터는 맞지만, 빌런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한 자기를 감추려고 애쓰는 평범하고 소심한 전형을 가진 인물이다. 부족한 자기를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남들이 보기엔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능력 좋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임에도 실력을 믿지 못하고 ‘운이 좋아서' 현재의 성취를 이뤘다고 믿는다. 이걸 자존감의 부족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딱봐도 나는 임포스터에 해당했다.


나의 임포스터 성향은 언제부터였을까? 그걸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는 임포스터인 부모 밑에서 아이들도 그런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성장 과정을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어떻게 강화되었는지는 적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박사 학위를 마치는 시간이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고 혼자 똘똘하게 뚜벅뚜벅 어려운 학위 과정을 밟아갔다고 볼 수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 과정과 결과가 내내 짐이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늘 ‘얼떨결에 따낸 박사’라는 보이지 않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남들의 두꺼운 학위 논문에 비해 얇기만 했던 나의 그것은 더욱 그런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심지어 회사에 들어와 박사라고 소개할 때면 저는 날라리 박사예요 라는 말을 하곤 했다. 박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주변의 박학다식한 다른 박사들의 모습에 비해 늘 아는 것이 모자랐고 경험이 부족했다(고 자책하곤 했다).


임포스터는 자기가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 자리를 빌려 갑자기 고백하자면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제대로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는데 지금도 능숙하게 운전하지 못한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만 할 것 같은 것을, 어렸을 때 적당한 시기를 놓친 이후엔 부끄럽고 민망해서 차마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되니까, 남들에게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니까 더욱 그랬다. 간혹 누군가와 자전거를 타야 하는 기회가 생기기라도 하면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글쓰기도 그렇다. 책을 냈지만 어쩌다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브런치만 봐도 공력과 필력이 남다른 작가들이 차고 넘친다. 내가 팔로우하는 작가들의 글은 포스팅될 때마다 높은 ‘좋아요' 횟수나 댓글이 늘 달리고 브런치 메인에서 자주 눈에 띈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것과 대중성, 또는 출간이라는 공식이 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출간 이후에 글을 쓰면서 나의 글감이 떨어질까 걱정이라도 들라치면, 거봐 글이 대단한 것도 없는데 책을 냈으니 운이 좋았군, 실력은 별 것 없어와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다. 나름 신경 써서 다듬고 다듬어 낸 글에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면 확증편향은 더 강해졌다. 전문적인 작가가 아님에도 운과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임포스터로 사는 것은 어떠한가. 저자의 말처럼 남들에게 완벽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그에 따른 적절한 성취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만큼 늘 긴장하고 불안한 감정이 함께 하는 것을 느낀다. 회사에서 특히 일처리를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작가의 주장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성격이 일부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성격 형성에 유전적 요인도 있겠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에 의한 양육의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살아가는데 스스로 힘든 상황을 거쳐야 하는 것이 대물림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안쓰럽다.


재미로 해본 적은 있지만 MBTI를 크게 신뢰하지는 않는다(나는 ISTJ). MBTI 열풍은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자 하는 욕망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긍정적 으로 보면 어떤 유형에 대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입장을 다룸으로써, 결국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조화로운 우리를 만들기 위한 이해의 틀을 갖추는데 기여한다고 본다. 같은 관점에서 임포스터이즘(임포스터 성격)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누군가의 삶의 태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임포스터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메타인지란 내가 모르는 것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나를 아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주변인 중에 자전거 타지 못하는 걸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며 용기 있다고 생각했었다. 문득 그의 고백을 듣고 못났다거나 실망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떠올랐다. 놀랄만큼 우리는 타인에게 큰 기대가 없는 것이 아닐런지. 그러니 완벽하지 않을 용기, 그걸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결코 나를 무너뜨리거나 망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어떤 성공에는 운도 있지만 그걸 위한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하려고 한다. 결국 나를 가장 사랑하고 신뢰해야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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