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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25. 2022

문제 해결 능력보다 중요한 것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빨리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급한 해결을 요구하는 케이스는 계획되었던 제품의 출시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지거나, 불시에 의사결정이 되거나 경영진의 한 말씀으로 시작되는 경우로 압축된다. 회사 일이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많지만 워낙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땐 갑작스러운 요청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다.

수명 업무와 즉시 대응 업무가 워낙 많은 부서라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는 태도로 근무를 하고 있으나 때로는 부당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별다른 논리나 설명 없이 ‘빠르게 이 업무를 해결해 달라'는 식으로 요구를 받는 때다. 물론 따져보면 앞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번만 예외적인 상황으로 둘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 -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며 정해진 프로세스를 무시한 채 달려드는 - 이 한두 번 학습되면 ‘당연히 급하게 요청해도 언제나 가능하더라'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실무진에서 봤을 때 불합리한 과정으로 요구되는 일처리에 대해 따지기는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급한 일은 말 그대로 급하니까 우선 불부터 끄고 본다. 또한 대부분 임원이나 팀장에게서 듣는 말 역시 잘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일의 합리적 설계 여부나 과정 상의 부당함 또는 무리는 없었는지를 확인 당한 적은 없다. 설사 그렇다고 어필을 해도 ‘그래, 알겠어. 하지만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고 나중에'일뿐이다.


왜 그런가 곰곰이 따져본다.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매끄러운 처리 여부가 ‘일을 잘하는 것’,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작 프로세스를 어기는 과정은 회사에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 수 있다는 가정, 무엇보다 자기 안위를 위한 면피용 회피성 태도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모두 같은 마음과 눈높이에서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과정과 목표의 설정이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특히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는 실험의 경우, 마케팅에서 바라는 막연한 비교 값이 나오긴 어렵다. 그걸 곧이곧대로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해하고 설명하며 합을 맞춰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필요성을 알면서도 (학습된 상황들로 인해) 더 이상의 정반합을 거부하는 때에 발생한다. 그것은 가끔 ‘알만한 사람들이 왜 이래’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예전에 모시던 모 상무님으로부터 회의 자리에서 “프로끼리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을 때 발끈했던 것은, 프로답게 핵심을 고민해서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지 않고 ‘프로니까’ 시키는 일에 토 달지 말라는 태도를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풀어야 하는 문제가 주어진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술 쟁이들의 특징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즉 솔루션 찾기에 아주 빠르게 집중하고 몰두한다는 점이다. 문제 풀이에 열중하는 이유는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자적 마인드와 접근법은 아무래도 후천적으로 길러진 태도일 것 같다. 어쨌든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데는 분명 장점이다. 십수 년간 문제 풀이에 능숙해진 장기를 마음껏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답을 찾아낸다. 정해진 기간에 맞게, 정해진 스펙과 결과물로 말이다. 이런 태도는 다음에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하면, 그때도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는 어이없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불합리한 요청을 무조건 거부하고 논리만을 따지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회사 일은 과정의 합리성을 따지고만 들 수는 없다. 다만 발생한 일이 해소된 후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던가, 일의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던가,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공부하고 다른 부서와의 갈등을 어떤 식으로 관리할 것인지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쪼르르 담당에게 달려와 빨리 좀 해줘라고 말하기 전에,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과 계획도 함께 고민해 주기 바란다. 그런 임원과 팀장을 찾기 어려운 것은 아마 본인 역시 유사한 과정을 과거에 맞이했었고, 그걸 해결해 가면서 성장과 진급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과정이야 어떻든 해결사에게 더 많은 공을 부여하니까, 과거 그들의 상사도 별다른 대안 이전에 문제 풀이에 집중하지 않았을런지.


어떤 동료의 말처럼 연구원은 솔루션을 찾는 사람들이지만 단순히 문제 푸는 선수가 되지 말고,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개선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미 해결이 완료된 것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귀찮고 괴로운 작업이지만, 충분히 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업무 문화를 후배들에게 전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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