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합

by nay

요즘 유행하는 MBTI는 자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16가지 분류이다. 나를 어떤 양식으로 정의한다는 것의 의미는 때론 자기 행동이나 판단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의도의 기재이기도 하다. ‘난 ENFP니까 충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해도 이해(받을 수)가 될 거야, 저 친구는 ISTJ라 계획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겠네’. 흥미로운 성격 분석의 관점이지만 이런 인식이 강해지면 폴 부르제의 말마따나,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


MBTI나 혈액형 성격을 빌어 자기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나름의 합리성으로 설명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기 마련이다.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 <불안>(알랭 드 보통)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남들의 시선과 사랑을 얻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만큼 타인의 사랑을 갈망하게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실망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미국 Northeastern 대학의 홈페이지 자료 중에서 ‘8 differences between working in industry vs. academia’에 대한 주제를 다룬 것이 있다. 졸업 이후에 직업으로서 연구자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다. 대학에서 뭘 이런 것까지 정리해서 올려놓았나 싶었는데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연구를 목적으로 학교에서 근무할 것인지 아니면 산업계로 진출할지 정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각 영역의 장단점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직업 관련 강의를 준비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특히 인상적인 문구가 맨 마지막에 있다. ‘Be true to yourself’.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보다 스스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라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에 따라 같은 연구직이라도 학교보다 회사가 더 나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 있다. 그걸 잘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어떻게 일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젤이 쓴 <돈의 심리학>에 공감 가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라는 자극적 부제는 마케팅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오히려 이 책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느낌이다. 그만큼 세상살이에 있어 새겨둘 만한 좋은 내용이 많은데 이 글에서는 ‘본인이 어떤 투자가인지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것을 공유하고 싶다. 저자는 투자자가 스스로 장기 투자자인지, 단기 투자자인지, 아니면 데이 트레이더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자신을 장기 투자자라고 생각한다면 일주일 사이에 등락을 거듭하는 시장의 변화에도 의연할 것이다. 어차피 시장은 계속 요동치는 법이다. 시간을 내 편으로 해서 우상향의 믿음이 있다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언제까지 무엇을 위해 투자해야 할지 정의하지 않고 어디가 많이 오른다더라는, 카더라 통신만 맹신하고 돈을 좇다가 멘탈이 털리는 소위 주린이에게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이다. 요즘 같은 어려운 장세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야기이기에 작가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가다 보니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본질적이면서 필수적인 질문인지 깨닫게 된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명품이나 비싼 제품을 사면서 나의 격이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을 한 적도 있지만, 남에게 드러나는 소비와 외형의 치장이 나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주장처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소중하게 여기는 것, 남들은 열광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 놀려도 좋지만 이거 하나만은 건드리면 큰일 나는 일종의 역린 같은 것은 무엇인지 가만가만 생각하고 정리해 보게 된다. 질문과 답을 통해 내 안의 가치를 찾고 있다. 그렇게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들의 총합으로 가득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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