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조경이 꽤 근사하다. 내 것은 비록 아니지만 근무하는 근로자로서 나름 자부심을 느낀다.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기에 골프를 좋아하는 분들은 여기서 퇴사 전에 한 번 드라이버 멋지게 날리고 떠나고 싶다!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이 푸른 잔디를 항상 보기 좋게 관리하기는 쉽지 않으니 조경 담당자가 매일 부지런히 손을 본다. 가꾸는 만큼, 손길 주는 만큼 아름다운 법이다.
건물 앞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잔디밭이 있는데 이곳에서 거의 매일, 그것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불평 없이 다니며 일하는 녀석이 있다. 자동으로 잔디를 깎아주는 기계다. 기능으로는 로봇 청소기를 떠올릴 법하다. 크기는 대략 커다란 캐리어 가방만 한데 바퀴가 달려 있어서 슬슬 다니면서 잔디를 다듬는다. 시속 아니 초속 대략 20cm는 될까? 가만히 지켜보면 대체 잔디를 깎고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작업의 티가 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안 한 것보다는 효과와 차이가 있겠지. 부지런하지만 느긋하게 정해진 구역을 꼼꼼히 관리하는 모습에 이상하리만치 나는 묘한 끌림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이 녀석의 삶(?)에 부러움을 갖는 것이다. 생명도 없고 질투를 느낄만한 구석이라고는 1도 없는 단순한 기능의 기계에게 어찌 사람이 되어서 부럽다는 마음이 드는지 낯설기만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매번 잔디밭 앞을 지나며 마주칠 때마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네’하는 생각이 들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대체 왜 그런가 생각을 해 본다.
햇볕이 쨍쨍한 더운 날엔 귀찮아질 법도 한 잔디 관리를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에 근면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는 것도 아니요, 사람이 먹이는 전기 외엔 불평 없이 무보수로 일 하는 이 친구의 어리석은 노동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글쎄 그러니까 어째서 이 단순한 기계의 운행을 부러움의 눈으로 생각하는 것이란 말인가.
여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는 가장으로, 아들로, 동생으로, 회사원으로, 연구자로, 작가로, 그리고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각각의 위치에서 저절로 생긴 의무와 역할을 가진 내가 겹쳐 보였다. 바라고 원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여된 짐 말이다. 그러므로 저 무생물에게 감히 감정이입이 된 것은 유유자적 앞뒤로 오가며 잔디와 교감하듯 누리는 여유로움! 세상 스트레스 없어 보이는 그 단순함! 현재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을 놀리기라도 하듯 눈앞을 지나가는 기계에게 못내 부러움이란 마음이 고개를 든 것이었다.
그뿐이랴. 요즘처럼 해야만 하는 것,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의 치임 속에서 중심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알게 뭐야, 남의 눈치 보며 살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잘하고 있는지 자꾸 확인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남들 다하는 주식투자 안 하면 벼락 거지되는 느낌, 골프 안치면 뒤쳐지는 기분이 드는 나를 반성한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주변의 시선 따위에 아랑곳 않고 조용히 책임을 다하는 잔디깎이 기계에게 이제는 살짝 경외심마저 들려고 한다. 여기저기 한 눈 팔지 말고 너의 페이스대로 갈 길이나 가라는 교훈을 던진다. 바깥에서 보면 얼핏 둔탁해 뵈는 외형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연약한 잔디를 깎을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듯, 외면보다는 내면을 깎고 다듬어 보라고 조언한다.
잔디깎이 기계여, 네가 부럽기만 했는데 알고 보니 큰 가르침을 주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