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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증 극복기

by nay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예요.

올해가 시작되고 알 수 없는 이유의 가라앉음과 무기력, 살아가는데 재미없음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장거리 외근을 홀로 가던 어느 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중 바깥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잠시 위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건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위험신호임을 직감했다. 한 방송에서 들었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란 말이 떠올랐다. 숨기거나 모른 채 할 것이 아니라 병원을 찾으라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휴게소에 차를 세워 당장 진찰 예약을 했다.

감기는 바깥에 있던 세균 등이 몸에 들어와 자라면서 숙주의 병을 일으킨다. 우울증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을 수 있을까? 주변 환경이 우울 증세를 더 악화 또는 강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이건 내 안에서 시작되는, 비자발적 마음의 병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공황 증세를 느낀 적도 있었기에 내 마음의 취약성을 잘 케어해 줄 필요가 있었다.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다.

약 복용을 시작할 때 의사 선생님은 이걸 먹으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대부분의 환자들은 우울했던 기분이 180도 달라지길 기대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모호했다. 다른 병은 증세가 나아지는 것을 확실한 지표로 알 수 있는데 에너지라니, 어쩐지 책임감이 없는 말처럼 보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확신이 있었다.


“저는 원래 에너지가 막 넘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이 약을 먹고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까요?”

“약의 효과는 본인이 제일 잘 아시게 될 겁니다”


만약 약을 끊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었는데 선생님 말씀으론 내게 처방하는 약은 중독 효과가 없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우울증 약은 매우 많고 다양한 기전이 있는데 그중 내가 복용하는 것은 세로토닌 호르몬의 분해를 막는 것이다. 세로토닌은 신경전달 물질로 분비가 적거나 빨리 분해되면 불안이나 짜증이 유발된다. 그걸 억제함으로써 쳐진 기분과 우울감의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다.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 처방한 약이 환자에게 맞지 않을 가능성 등을 열어두고 원래 처방의 반만큼 2주 동안 복용하기로 했다.


원래 크기의 반알을 먹으면서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과연 약을 먹어보니 선생님이 말한 ‘에너지'의 회복이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랄까, 몸을 써야 하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 전에는 의식적으로 행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런 의식의 강도가 줄어들어 한결 가볍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서 크게 마음 상하던 감정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금 더 여유로움을 갖는 것도 있다. 짜증이 줄어드니 가족과 주변에도 덜 미안하고, 미안할 일이 생기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해져 좋다. 회사 일에서는 조금 다르게 부작용(?)도 있다.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무기력함을 핑계로 대충 넘어가던 부분에 오히려 예전만큼 짜증을 내는, 그러니까 무관심하고 정력적이지 않았던 일 처리의 태도가 달라지는 점이다.


나는 과연 극복했을까?

쭈뼛거리며 병원을 찾았을 때 자리에 앉아 대기 중인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얼핏 봤을 때 학생도 있고 2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꽤 있기에 정말 이제는 마음이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 같음을 느꼈었다.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약의 효과는 확실히 보고 있다. 달라진 점은 본인도 잘 알지만 아내가 무엇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느낀다. 오죽하면 계속 약 먹으면 안 되냐고 물어볼 정도. 하지만 선생님 말마따나 우울증 치료제를 먹음으로써 당장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거나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날 땐 여전히 힘들고 저녁엔 지친다.

다만 적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찾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기력으로 놓치던 일상의 작고 소중한 순간을 인지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덜 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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