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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공정에 대한 단상

by nay

나는 남의 나이에 참 관심이 없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그가 몇 살인지 궁금하지 않다. 그렇기에 한국식 인사의 기본이 이름과 나이를 말하는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 (또는 안다고 해도) 내 나이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한두 살 차이로 형과 누나, 동생을 구분해야 하는 것 역시 불편하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거나 실제로 어리다고 쉽게 대한 적 없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로 하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식 사고가 깊게 배어 있는 탓인지 아니면 사회에 적응하면서 생긴 학습과 버릇인지 알 수 없으나 나보다 많아 보이면 공손함을 찾으려 한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오래전 광고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생물체가 태어난 이후부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연식을 표현하는 문명사회의 약속일뿐이다. 너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은 그래서 폭력적이다. 대게 이런 질문은 불리할 때 나오는 것인 만큼 치사하다. 개인의 의지, 삶의 궤적과 경험, 상황의 유불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태어난 시점을 기준 삼아 계층과 계급을 구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심지어 같은 해에 태어나도 몇 월생이냐로 세세하게 비교 우위를 점하려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현명하지도, 더 바람직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어린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창의적이고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어떤 경험을 해볼 기회가 별로 없기는 하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평균적으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다. 오히려 나이를 알고 나서는 상대의 행동을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았다. 흔히 꼰대적 행위로 일컬어지는 것들, 라떼로 통칭되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이라는 인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경험 상 나이가 들면 유연해 지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사고가 더 단단해지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서 사회적 통념과 무관하게 누군가의 사고 체계와 그에 따른 행동의 패턴을 강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생각은 든다. 역시 평균적으로 늙어가는 것에는 큰 기대감을 싣기 어렵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40대 기수론'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사회 통념을 조금 좁게 설정하여 회사에서 살펴보았을 때, 나이 먹음과 경력, 경험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는 항목이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년 등을 앞둔 근로자들의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고용법 위반에 해당해 무효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올해 5월 기사이다. 회사 입장에선 어릴 때 들어와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높은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부담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연봉뿐 아니라 승진에도 영향이 있다면 어떨까? ‘합리적인 이유'라는 말이 모호한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연령만을 잣대로 조직 운영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행위는 역시, 어째 치사하기 그지없다.


누군가에겐 나보다 더 나이 많은 또는 적은 사람이 불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상대의 나이 따위 관심도 없고 그저 그 사람의 역할과 할 일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듯이, 나보다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역설적으로 단지 나이가 좀 많다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저 태어나 밥 수백 공기 더 먹었다고 우대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공정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만하다. 예전에 자기보다 더 어린 사람이 팀장으로 온다는 말에 같이 일하던 후배들을 나 몰라라 버리듯이 팀을 옮겼던 선배가 있다. 그때도 생각했다. 나이 먹는게 다가 아니구나. 비겁하다.


얼마 전 <손에 잡히는 경제>에선가 들은 얘기가 있다. 먹고살만해지면 사회가 공정을 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장이 우선일 땐 조직 내 위계질서가 훨씬 중요해진다. 나이를 비롯해서 위계와 지위로 찍어 누르던 시대를 거쳐야 한다. 공정의 미덕 보다는 치열한 전장에서 승리를 위한 효율성과 속도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러다가 성장이 정체된 시기가 오면 다른 묘안을 찾아내야 한다. 다양한 방식의 조직문화 개선,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그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공정과 형평을 고려하다가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안된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회사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나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이다. 다수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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