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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ug 12. 2022

감정적인 나를 달래려고 글을 씁니다.

사람은 감정적이다.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이성적 영역의 일을 감정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은 위험하다. 합리적 판단의 기회는 사라지고, 냉정함을 잃은 정신은 결국 이상한 솔루션을 내놓는다. 아니 솔루션이 나오기보다는 길을 잃는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일을 잘하고 욕심도 있는 동료가 있었다. 같이 일할 때 많이 의지하고 든든하게 여겼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다른 부서에 배치된 그를 만나보니 어쩐 일인지 조직장과의 갈등이 심했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옆에서 관찰을 해보니 때로는 지나치리라 싶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직장이 다른 누군가에게 했을 법한 말을 해도 ‘거봐, 나한테만 이렇게 심하게 대하는 거지’, 그것이 쌓여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뉘앙스를 꼬아서 해석하거나 별 것 아닌 말 하나하나를 모두 화살처럼 받아들였다. 안타까웠다. 이럴 땐 아무리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찰한 모습을 전달하려고 해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 일을 할 땐 정말 이성적인데 사람을 대하는 건 감정적이었던 것이다.


대상이 사람이기에 감정이 앞설 수 있다.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이해하면서 잔뜩 경계하는 이유는 감정을 앞세운 경우 좋은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둘 다 상처받거나 어느 한쪽의 상처가 크다.

바람직하게는 대화라는 좋은 방식이 있다. 단순한 잡담을 포함해서 동료와 대화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상처를 위로받기도 하고, 공공의 적을 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다. 누군가를 욕하고 씹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당장 풀릴지는 몰라도 자꾸 반복하다 보면 되려 안 좋은 감정이 더 증폭되거나 대화에 끌어들인 동료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대화의 순기능은 미처 풀지 못한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다면, 본인이든 상대방이든 잘못 알거나 오해하는 것이 있을 때 대화를 통해 원만한 방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모든 경우에 대화가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어렵거나, 대화의 스킬이 부족하거나, 대화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갈등만 커질 수 있으니 활용을 잘해야 한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12가지 삶의 규칙을 제안하는 <질서 너머>(조던 패터슨)에는 이런 제목의 챕터가 있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이런 언급도 있다. 


‘당신의 상당 부분은 당신이 세운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정이 당신의 세계를 조직한다’. 


감정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특성상, 결국 우리가 맺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렇기에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필연적이다. 그걸 대화로 풀지 못하고 끙끙 댄다면 차라리 일기가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하나의 글로 완성해 볼 가치가 있다. 예전에 내가 썼던 많은 글들에는 알게 모르게 나를 괴롭혔던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괴롭혔다는 감정은 - 위에서 말한 동료의 이야기처럼 - 다분히 내 관점의 해석이다. 상대의 의도는 확인한 적 없다. 받아들이는 나의 감정만 생각했을 때 그랬다는 것이다(=내가 세운 가정일 뿐이다). 당시에 나는 갈등을 원만한 대화로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브런치에 쓴 글로 해묵은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사례에서 얻은 교훈과 반성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제삼자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 중심의 가정으로 구축한 세계관'을 해체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당시의 나와 상대를 돌아보니,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정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숨겨진 의도가 있든 없든 글을 통해서 나는 의도치 않은 구원을 얻었다. 비록 감정의 배설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배운 것이 있다. 혹시 자신이 상대에게 불만이라면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자. 사람 사이에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만약 대화가 여의치 않다면 글을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도 꼼꼼히, 자세하게. 어쩌면 나처럼 글쓰기로 부터 구원을 받을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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