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소비자의 길 따위 포기하고 싶은 나.
모 신용카드 중에 남은 잔액을 적립해 주는 상품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적립 기준은 이렇다. 5천 원 이상을 써야 하고 백 원 단위 이하의 금액은 적립이 된다. 예를 들어 5200원을 쓰면, 200원을 카드사가 적립해 주는 것이다. 아내는 카드 사용에 따른 적립에 진심으로 진심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분할 결제를 시도한다. 어차피 낼 돈이라면 가능한 적립액이 많이 쌓이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전략이다. 즉 잔액이 약 900원 정도가 되도록 1차 결제를 하고, 남은 금액만큼 다른 카드로 지불하는 것이다. 분할 결제를 하도 자주 하다 보니 포스기를 잘 모르는 가게 주인이나 알바생에게 알려 줄 정도가 되었다.
나라면 절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아내이기에 차마 내게도 그 카드 쓰라고 권유는 못해주겠단다. 배려가 고맙다.
얼마 전 망가진 밥솥을 사려고 큰 매장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데 직원 왈, ‘신용카드 개설하고 오시면 9만 원 할인해 드립니다'. 그나마 사용 의무는 없으니 일단 만들기만 해도 혜택 아니냐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참 거슬렸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신용카드 만드는 건 별개의 일인데 할인이라는 미끼로 권유받으니 영 찜찜했던 것이다.
몇 년 전 해외생활을 할 때 편했던 것 중 하나는 적당한 할인 조건이었다. 온라인이든 백화점이든 마트든 적혀 있는 금액 그 이상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물론 손품 팔고 발품 팔면 조금 더 저렴한 가격을 찾을 수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노력을 들일 가치에 대해서는 개인의 가치 판단이란 부분이 작용했다. 하나의 제품을 얼마나 싸게 구해야 상대적 손해 내지는 이득이라는 느낌적 느낌을 당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염려는 없던 셈이다. 최저가로 샀다는 희열을 느낄 기회는 없어도 최저가 구매를 실패했다는 아쉬움이나 자책도 없으니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 했달까.
한국에 돌아온 뒤 잊고 지냈던 할인과 적립 시스템에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알림 설정하면 1000원 쿠폰, 쇼핑몰 첫 가입하면 1만 원 할인쿠폰, OO카드사 이벤트 1만 원 캐시백, 세금 낼 때 OO카드 혜택으로 커피 쿠폰 1장, 30만 원 이상은 2만 원/50만 원 이상은 5만 원 상품권 제공.. 아 맞다. 작년에 신차를 살 때 오토 캐시백이란 시스템을 알게 된 후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여기에 내용을 적기엔 복잡한데 이렇게 해야 몇십만 원 또 돌려받는(즉 싸게 사는) 것을 보면서 신세계가 다 있네 싶었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혜택과 할인, 쿠폰 적용 이벤트를 꿰뚫고 있기도 어렵거니와 때론 교묘하게 ‘나는 혜택을 제공했지만 못 챙겨 먹은 당신이 바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자주 쓰는 카드의 혜택을 받으려면 앱에서 메뉴를 찾고, 거기서 또 혜택에 대한 체크를 해야 비로소 할인이 된다. 대체 왜 이런 복잡한 시스템을 만든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이쯤 되면 솔직히 스마트한 소비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각종 쿠폰을 주긴 하지만 그에 대한 프로모션 상품은 제한적이라서 몇만 원 이상에 적용되는 쿠폰을 써보지 못하고 낚였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름 스마트폰 사용과 각종 카드사 이벤트 등에 익숙함에도 갈수록 더 어수룩해지는 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마트에 갔더니 마트 앱에 로그인해야 쿠폰을 주는 시스템이 있길래 어쩔 수 없이 앱을 설치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계산할 때는 카드사에서 할인과 캐시백 해주는 혜택을 보고자 내 걸 쓰고 말았는데, 애초에 앱과 쿠폰은 아내의 폰에 다운로드하였다는 것을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제 돈 다 주고 사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리 하면 큰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니, 가끔은 법으로 쿠폰 및 할인 불가라는 강제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니면 아주 편하고 쉽게 적용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게 하던가. 그저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이게 최선의 할인과 적립인가, 고민하는 시간과 노력이 즐겁기보단 씁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