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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21. 2022

운칠기삼은 과학입니다.

2022 이그노벨상 경제학 부문 논문을 읽고. 

운칠기삼이란 말은 성공에는 능력보다 운의 작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슷한 뉘앙스로 ‘될놈될’ 같은 것이 있겠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부정하긴 어렵다. 살다 보면 어쩐지 틀린 말이 아니란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제시한다. 자기 계발서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비슷한 까닭에서다. 능력을 함양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논리이다.


2022년 이그 노벨상 경제학 부문의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제목부터 발칙하다. Talent vs. Luck, the role of randomness in success and failure. 한국에 기사로 요약 소개된 내용은 이렇다.

재능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 성공하기 더 쉽다는 논문이다.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공에는 무작위성의 요소가 꽤 크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제목과 요약만 봐도 막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들의 연구 논문이 궁금하여 읽어 보았다. 그들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적 모델링을 도입했다. 서로 다른 수준의 0(없음)~1(제일 많음)까지의 재능(Talent; 지능, 기술, 영리함, 완고함, 투지, 열심히 일함 등과 같은 개인적 역량으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을 부여한 N명의 사람을 가정하였다. 재능은 일반적인 표준 분포를 따른다. 20살부터 60살까지, 40년의 삶을 가정함으로써 단지 일생에서 한 두 번의 제한적 기회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Lucky와 unlucky 상태를 제공하였다.. 고 한다. 안타깝게도 제일 중요한 모델 개발과 로직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성공의 기준은 그러나 결과와 해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 논문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정리해 보면,

-좋은 재능을 가진 것이 성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특히 중간 이상의 능력(medium-high talent)은 큰 성공을 하는데 필요했다. 감나무 아래에서 언젠가 떨어질 감을 먹으려고 입만 벌리고 있다면 곤란하단 얘기. 노력 없이 단지 운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시뮬레이션 결과, 가장 성공한 (여기서는 부 wealth를 측정하는 것으로 함) 사람들이 가장 능력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도 unlucky event에 노출이 많이 되면 성공 확률이 크게 감소했다.

-운이라는 요소를 너무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성공하려면 Lucky event를 만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 개인의 활동을 확장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Open-minded person이 되라고 조언)

-능력 있다고 여겨지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100의 자원을 몰빵할 것이 아니라, 적당한 능력의 여러 사람들에게 적딩히 나눠 주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성공을 이끄는 정책과 전략이 될 수 있다(사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여기에 있다. 성공 여부에 운이라는 인자가 생각보다 크게 작동하므로 그걸 상쇄할 수 있는 국가나 사회의 운영 방안이 요구된다).


우리는 어쩌다 성공한 사람들이란, 엄청난 재능을 물려받거나 또는 자기 계발에 열심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세상은 적당한 ‘신화’를 필요로 한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그럴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운이 좋아 성공해 버렸지만 단지 운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도 있다. 회사에선 창립자를 신격화하기 위한 최고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한다. 노력의 가치라는 사회적 합의가 틀리면 안 되니까, 성공의 이유는 운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쩐지 재능이 비슷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뼈를 깎는 노력, 남들과는 다른 불굴의 의지, 포기를 모르는 집요한 성격, 성공할 때까지 덤빌 줄 아는 대담함.. 이런 것들이 적당히 치장될 때 성공은 더 가치 있게 보이기 마련이다.


연구 결과의 데이터를 보면 (다행스럽게) 운 그 자체만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흔히들 운이 왔을 때 잡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 대목 역시 시뮬레이션에서 확인된다. 그러니 논문을 소개하는 이 글을 통해서 얘기하고 싶은 건 개인의 노력과 준비가 절대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성공을 단지 노력과 재능의 결합만으로 해석하는 순간, 타인의 실패담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노력과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강요하고 무시하면서, 자신은 선택받은 사람,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바라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패러다임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 계발서 열심히 읽고, 리더십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지만 아직까지 현재의 조직에서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해 나의 노력 부족을 핑계로 자책한 적이 있다. 때로는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을 괜히 준비했구나 후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을 보고 나니 응어리졌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기회와 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조직 생활에서 선택받는 누군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재능이나 역량의 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내가 모자란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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