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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26. 2022

여가 시간에 독서를 한다고요?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사용하느냐 하는 질문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산업 혁명 이후에 일터와 가정에 할애되어야 하는 시간과 장소가 분리된 것은 보편적으로는 축복에 가깝다. 그런 만큼 (저주라고 부르기는 좀 과하지만) 일터가 아닌 곳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은 은근히 부담이 된다. 흔히 여가시간이라고 불리는 그것에 대한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동아비즈니스리뷰에 김수경 (한신대) 교수가 기고한 글 중에 있는 이 표현은 꽤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노동이 아니라 소비와 여가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노동이 사회와 국가를 돌아가게 만드는 중요성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직과 자신을 한 몸으로 여기지 않는 이상,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자신의 정체성은 다른 개념이다. 매슬로우가 말한 자아실현의 최정점을 노동자로서 최고 수준에 이르는 것이라고 믿거나 동의하는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밥벌이 수단이기에 그만큼 고단하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오히려 그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경제적 자유라던가 FIRE족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맥락은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노동(돈벌이)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 예를 들면 우리 아들 - 책을 읽는 행위가 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의 하나로 인식된다. 초등학생인 이 친구는 본인의 입장에 따르면 ‘분명히 책을 좋아는 하는데’ 정작 책 읽기는 그 정도로 애정 하지는 않는다. 책 좀 읽어달라는 부모의 성화에 힘입어 겨우 몸을 움직여 보기는 하지만 대체로 쉬고 싶다며 등한시하니, 내 추측과 관찰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들에겐 독서가 엄연히 노동인만큼 얼른 끝내고 게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그의 입장에선 더 적합한 소비와 여가이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된다. 


이런 현상은 단지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2021년 조사된 성인의 1년 독서량이 4.5권이라고 한다. 그것도 매년 줄어드는 상황이다. 독서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일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와 ‘책 말고 다른 매체나 콘텐츠를 이용해서’가 각각 26%로 비슷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빠 죽겠는데 기왕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책보다는 다른 것을 택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가를 보내는 한 수단으로써 독서를 택한다는 것은 꽤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루 중 얼마 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로 독서라는 옵션을 두는 것이 여가 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최근에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구입해 둔 책을 꽤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어쩌다 하루 이틀 바쁘거나 지쳐서 읽지 않게 되니 어쩐 일인지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독서의 행위가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몰입의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 또한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급하게 먹다 채 할라, 지나치게 좋아하다 멀어질라. 그저 꾸준하게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나의 취향을 찾아내며 이렇게 글까지 쓸 수 있는 자극원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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