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입사 동기 한 녀석이 보낸 메신저가 상태바에서 깜빡깜빡 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열어보니 확장자가 jpg 다. 뭐지? 싶어 다운 받는 도중, 동기의 한 마디.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보내줬는데 거기 형의 모습이 있어서 보내요
궁금한 마음에 파일을 열어보니 가관이다. 촌스러운 디자인과 누런 색상의 상의를 단체로 맞춰 입고 다 같이 앞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신입사원 연수 당시 CEO와의 대화 시간에 누군가 찍었던 사진이다 (아마도 행사 관계자였겠지). 두 장의 사진 중 한 장은 좀 더 크게 내 모습이 나와 있는데 살짝 졸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우연히 눈을 감았을 때 찍혔다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하게 졸린 모습이다. 갑자기 그래, 그 때 그 시간에 참 졸렸었지 하던 기억이 났다.
10년도 넘은 이 사진을 누가 어디서 발견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때는 참 멋도 모르고 이제부터 돈 벌 수 있다고 좋아했었는데 그렇게 한 회사에서 지낸 지 오래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서 토토가2: 젝스키스 편을 보았다. 한 때는 수 많은 소녀팬들을 거느리고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화려한 20대를 지나온 멤버들이, 이제는 2016년 현재를 사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 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자신감 있던 시절은 과거이고 지금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많아진다'는 내용의 멘트가 콕 박혔다. 모든 것에서 자신감 넘치던 전성기의 젝스키스는 사실 그 당시 나의 관심에서 매우 멀리 있었다. 그런데 조금은 삶에 찌든 현재의 그들에게서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꼈다.
입사 초반만 해도 온갖 회사 문화나 방침에 비판적이던 내가, 지금은 회사의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실제로 또 상사들의 행동이나 회사가 이해되곤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 변했다', '선배가 달라졌어요' 이런 말들이다. 그 말에 반박하진 않는다. 나 역시 인정하니까. 연차가 쌓이고 누군가와 같이 일을 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간다. 글쎄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 원한 것이었고 일부는 나도 모르게 물든 것이다. 아마도 혼자 살 때 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을테고, 나이 마흔 넘어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 보다는 안정된 시스템에서의 편한함을 더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적어도 이 나이쯤 되면 내 얼굴과 이름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기 때문일거다.
변해가는 나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면서도 한 편으로 아쉬운 것은, 아마도 하룻 강아지 마냥 아무 걱정도 고민도 나를 짓누르지 못하던 나만의 전성기가 끝난 것은 아닌가 하는 미련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