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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Dec 21. 2022

문장을 다듬으며

이미 썼던 글을 다시 쭉 읽다 보면 두 가지로 생각이 갈린다. 첫째, 아 이건 내가 봐도 참 잘 썼다, 둘째,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예상하다시피 보통은 후자의 결론이 더 자주 그리고 많다. 분명 쓸 때는 잘 어울리는 말이었는데 지금 보면 영 맥락 없는 내용이 붙어 있기도 하고, 불친절한 내용 때문에 쓴 사람은 나인데 남이 써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되어 궁금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은 그만큼 혼란스럽다. 단락과 단락 사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한탄한다.


항상 결론은 이렇다. 급하게 올리지 말고 더 다듬었어야 해. 엉망인 글을 올리는 이유는 현재의 기분과 생각을 담아낸 글을 얼른 공개하여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그렇다. 일기의 목적이 아닌 이상 보여주기 위한 의지가 지나친 것이다. 또는 지난번 글을 올리고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 쯤이면 하나 정도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강박이 올 때도 있다. 진중하게 진득하게 고치고 또 고쳐서 완성된 글 대신 급한 성격으로 일단 했다는 만족감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일의 격> 저자인 신수정 님은 완벽주의보다는 완료 주의 관점에서 글을 써보라 조언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지만 완성도에 대한 만족감은 나중에 다시 읽어볼 때 꼭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뒤죽박죽인 글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읽는다. 퇴고라는 행위는 완성도에 대한 자기만족적 가치도 있겠지만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이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왜 썼는지 모를 불필요한 문장, 변명에 불과한 사족을 시원하게 날려 버린다. 내용이나 전개와 상관없지만 한쪽 방향으로 막 몰아간 끝에, 이러면 곤란하지 싶어 도망갈 구석을 남겨둔 흔적을 지우고 날 선 생각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자주 쓰는 표현도 눈에 띈다. ‘문득’, ‘사실’, ’ 어쨌든 ‘, ’ 당시‘와 같은 단어는 왜 그리 남발했는지. ‘사실’이란 말은 실생활에서 말할 때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말하다가도 또 쓰네.. 하며 인지할 정도이다. 언젠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에 ’아니 근데‘가 있다 하여 낄낄 거리며 웃고 크게 동의하였었다. 사실 그게 말이지, 이런 표현도 비슷한 맥락에서 동어반복적으로 쓰는 것일 게다. 다른 말로 바꾸지 못하고 나온 단어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두 문장에서 보이면 어떤 때는 화가 난다.


문장을 다듬어 가며 글을 썼던 시간과 느낌을 기억해 내 본다.

대신 나만의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익명의 독자 마음에 공감이란 글자가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더 쉽게 잘 읽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어울릴 수 있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이 되도록 말이다. 첫 책을 낼 때처럼 퇴고에 퇴고를 거쳐가며 때론 새롭게 쓴 글의 횟수가 줄었다는 것이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 번째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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