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개발을 하다 보면 스펙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상대방, 경쟁 제품 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어필하려면 어린 아이 싸움인 양, ‘내가 더 힘 세다’는 걸 자랑하게 되는 거죠. 치열한 전장에서 우리 제품이 이길 수 있는 스펙을 실험과 데이터로 규명하는 작업을 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가 싶은 생각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구글 UX 디자인 리더로 잘 알려진 Eunjoo Kim님이 소개해 주신 링크를 보면 언뜻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링크에 걸린 내용은 대니얼 카너먼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에 대한 것입니다. Thinking, fast and slow라는 책을 썼지요. 빠른 직관과 느린 이성에 대한 이론인데 아직 저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링크에 있는 'Cognitive ease'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덜소비하면서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을 선호한다"
누구나 알만한 무엇(경쟁제품)이 시장에서 널리 인정 받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 제품은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낫다는 점을 강조하면 ‘쉽게 이기는’ 그리고 '효율적인' 전략적 접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고객들이 인지하기 쉬운 상대가 있다면 설득하기 쉽다는 논리랄까요. 내 제품을 사야하는 적합한 이유는 다른 제품보다 더 좋다는, 비교 우위를 이용해서 상대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에 이런 언급이 있어요.
“Cognitive ease makes it possible for you to approach your target audience and reach them. However, it doesn’t mean that you should do absolutely everything just like your competitors, to use priming and repetition for instance. In most cases breaking the rules generates exactly the notice that is necessary for success.”
저는 이 요약이 좋습니다. 스펙은 싸우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요. 그게 목적이 되면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길 때까지. 만약 경쟁자가 우리 보다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든다면 어쩌죠? 그럼 또 이길 때까지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할까요? 연구개발 부서에 근무하지만, 우리의 맹점은 고스펙, 고사양이 제품을 정의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밈이 있습니다. 옴니아가 좋지만.. 저는 아이폰을 고를래요.
물론 최소한의 싸움을 하려면 스펙에서라도 이겨내는 무기를 손에 쥐어 줘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진짜 카운터펀치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대충 떠오르는 것은 브랜드나 제품의 가치 같은 추상적인 건데요. 그건 아마도 ‘규칙을 깨는 무엇’을 찾아내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