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lton rule이란 것이 있다.
분자는 크기가 있다. 그 크기가 500 dalton 보다 작을 때 피부를 투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좀 어려워 보이지만 대충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피부는 외부의 물질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보호하는 기능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크기 이하의 것들은 어느 정도는 투과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회사에 들어가 초반에 과거의 이론들에 대해 많이 배웠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500 dalton rule이었다. 언뜻 봐도 설득력이 있다. 피부가 만만해서 아무거나 들락 거리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크기가 작다면, 그리고 작을수록 더 잘 들어가긴 하겠구나 싶어지는 건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나노 크기로 입자화 시키는 노력을 한다. 유효한 성분인데 분자량이 500 보다 크다면, 아 효과가 나오기 어렵겠구나 했었다. 나는 이 규칙을 그렇겠거니 하고 믿고 살아왔다. 왜냐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들 끄덕끄덕 하고, 학회를 가도, 내부 발표를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대체로 ‘학계의 정설’ 정도라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성역이 되는 법이다.
최근에 다른 부서의 연구개발 소재를 평가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이 선입견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분자량의 차이만으로 피부 투과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의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단계라 더 말할 수는 없다만, 갑자기 든 의문은 ‘대체 500 dalton rule은 어디에서 누가 주장한 것인지’였다.
이 이론에 대한 근거를 찾아보니 2000년에 Experimental Dermatology라는 저널에 발표된 논문이 있다. 제목은 “The 500 Dalton rule for the skin penetration of chemical compounds and drugs”. 제목에서부터 500 dalton을 언급하고 있으니 과연 이 논문이 최초가 된 그것이 맞지 싶다. 다만 내용을 보면 아주 정확하게 500 dalton이라는 크기에 대한 근거가 어째 약하게 느껴진다. 20여 년 전, 이 논문을 쓸 당시 연구 내용들을 모아서 리뷰한 건데, 대략 주장의 이유는 이렇다.
-접촉성 알러지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은 크기가 712 보다 작다
-도포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유효한 약물의 크기는 500 보다 작다.
논문의 저자들은 실제로 투과 연구를 직접 진행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서 논리를 개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외적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으며,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사례에 대해서도 반박을 어느 정도 해 두었다.
논리적 근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름 이 업계의 밥을 먹고 산 지가 20여 년이 되어가는데 - 물론 내 핵심 영역은 아니지만 -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놀란 발견이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의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 이제야 겨우 주장의 근거가 되는 논문을 찾아 읽어 봤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내친김에 피부 투과 연구 전문가에게 질문해 보니, 대체로 그게 맞다는 건 맞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 않은 결과들이 종종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단지 분자량이라는 기준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다. 첨언하면 물질 전달체 기술이 발달하여 분자량이 좀 크더라도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말한다고, 그리고 언뜻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하더라도 정말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지고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수고가 있어야 성장한다. 7-8년을 여기에서 ‘연구하는 회사원’ 운운하고, 연구자란 어떻게 해야 한다 좋은 말만 늘어놓았던 나를 반성해 보는 것이다. 호기심과 의심이라는 덕목은 연구자에게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