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Jan 16. 2023

순발력은 없어도 진중한 사람입니다.

순발력이 떨어지면 회사 생활에 불리하다. 여기서 순발력이란 회의 자리에서 갑자기 질문이 왔을 때 대답을 하거나, 거꾸로 촌철살인의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말한다.


평소처럼 편안하게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별로 문제 될 것 없다. 그렇지만 회의 시간에 질문과 답변만으로도 누군가의 평판은 매우 달라진다. 예전에 고속으로 승진한 어떤 분은 경영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항상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썰을 듣기도 했다(썰은 썰일 뿐이지만 여하튼 내 눈에도 저분은 참 질문을 열심히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어쨌거나 질문을 하면 똘똘해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뭔가 이해를 했거나 아는 것이 있으니 질문을 하고, 또 그만큼 호기심도 많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줄곧 발표 내내 조는 모습을 분명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느 틈에 깨어나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임원을 본 적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순발력과 순간적인 집중력의 천재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었다. 임원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싶었다.


쉔네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요.


그러나 고도의 순발력이 필요한 경우는 오히려 질문자가 아니라 답변자에게 있다. 일단 동문서답하는 순간 급격히 답변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우리가 좋은 것은 잘 몰라도 나쁜 건 제대로 알아차린다. 가끔 질문 자체가 모호하거나 엉뚱해도 찰떡 같이 핵심을 파악하는 것, 이 순발력이 참말로 중요하다. 공격의 의도가 있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재치 있는 답변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아직도 꽤 중요했던 자리에서 받았던, 주제를 벗어났었던 질문이지만 내가 적절하게 답하지 못했던 때를 떠올린다. 이불킥 까지는 아니지만 못내 아쉬운 순간이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나는 순발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거의 언제나 회의 끝에 ‘아 이렇게 대답할 걸’ 내지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는데’와 같은 아쉬움을 갖고 나온다. 내 성향은 느긋하게 - 압박을 느끼지 않는 편안한 상태에서 - 충분히 자료를 검토하고 고민을 하고 답변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게 나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자신감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이 자리에서 어떤 논의에 답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는 무너지고 만다. 회사 생활을 그리 오래 했음에도 못하는 건 못하는 것이다. 대신 뻔뻔해지기는 해서 모르면 모르겠다, 이런 대답은 곧잘 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임기응변으로 어물쩡 넘어가기 싫어서, 말 빙빙 돌리며 무슨 말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교묘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완벽한 답변이 아니라면 못하고 말지 하는 완벽주의적 태도의 반증이라고 스스로 다독여 보기도 한다.


순발력을 높일 방안이 있을까?

마땅히 묘책은 없다. 어쩌면 회사를 그만 다닐 때까지 비슷한 것이지 싶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자리에서 모르는 상황에 대해 확답이나 확신을 내비치지 말 것, 그리하여 신중함을 강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더 알아보고 피드백(답변) 드리겠다고 할 것, 모르는 것은 모른다,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확실하게 할 것 등이다. “저 친구는 시간을 달라고 하긴 해도, 확실하긴 해”, 이런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기심과 의심이야 말로 연구자의 기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