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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05. 2023

편견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사이언스 픽션. 보통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소개되는 문학의 한 장르가 있다.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에 근거하여 있을 법한 일을 글로 구현해 낸 것을 말한다. 요즘 보고 있는 책 <사이언스 픽션>(스튜어트 리치)은 소설이 아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이, 사실은 가짜 내지는 오류 투성이일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실험의 결과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데이터만 추려서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가설에 대한 리포트로써 가치를 스스로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과학계에 만연하고 있는데 있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 중에 성공하는 몇몇이 되려면 세간의 관심을 받아야 하듯, 연구자들도 유명해져야 펀딩도 쉽고 좋은 후학들을 모으는데 도움이 된다. 저명한 교수들이 발표하는 논문은 상대적으로 더 가치 있게 그리고 상대 연구자들에게서 더 신뢰를 받는다. 신진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내기 어렵다. 연구의 영역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확실하다. 그러니 더 자극적이고 대범한 제목과 결과,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놀라운 가설의 증명이 필요해진다. 이른바 과학소설이 되는 논문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다.


연구의 결과를 논문이라는 양식으로 발표하려면 이미 알려진 사실에 반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세운 가설이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 수 있다’는 가정에 부합하는 경우가 훨씬 편하고 유리하다. 이것은 현재의 논문 검증 프로세스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보통 논문을 어떤 저널에 게재하려면 Peer review라는 과정을 거친다. 익명의 동료 연구자들 중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내 논문을 읽고 검토해 보는 것이다. 연구의 내용이 지나치게 새로워서 그 자체가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면, 검토할 사람이 가진 기존의 지식들에 부합할수록 연구를 잘 수행했다고 인정받기가 쉬워지는 구조이다. 안그러면 계속해서 내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제시하라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연구 사례가 없거나 부족하면 모 아니면 도라고 봐야 한다. 센세이션을 일으키거나, 이 저널 저 저널을 전전하다가 끝내 발표되지 못하거나.


대체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라고 의심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과학은 정확하고 윤리적인 것이어야만 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많은 예시는 앞서 소개한 책에서 다뤄진다. 여기에 완벽한 대답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아주 실제적인 예시를 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연구의 시작은 가설이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다양한 실험을 한다. 그런데 가설의 문제든 연구력의 한계든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또는 가설에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이때 예쁜 그림(적절한 결과)이 나오지 않으면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논문이란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는 까닭이다. 보고되지 않는 수많은 네거티브 데이터들은 서랍 속 어딘가에 짱 박혀 끝끝내 빛을 보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학계든 기업이든 필요한 결과들만 모아서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작년에 내 동료가 연구한 결과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솔직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기존의 통념에 위배되는 현상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반복된 결과를 확인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 결과를 같이 논의했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그가 실수한 부분은 없을까, 샘플이 뭔가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 실험의 방법에 오류는 없었을까를 의심했다. 완전한 신뢰를 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웃기는 점은 다른 연구자들이 우리의 결과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내 의심이 풀렸다는 것이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통상의 상식, 확증 편향된 해석의 방향을 이겨내는 것은 어렵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의 연구 결과를 완전히 지지해 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나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나 역시 편견 가득한 사람임을 확실히 일깨워 준 사건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편견에 맞서는 것은 자기에게 더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쉽게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집착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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