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의 한 도시를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첫 해외여행이라 오랜만에 찾은 인천공항은 꽤 많이 보수가 되어 있어 보였다. 몇 시간을 날아 기분 좋게 도착했던 것에 비하면 현지에서 시작된 체험은 시작부터 어쩐지 어둡기만 했다. 활주로에서 버스로 이동한 후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도중에 갑자기 멈췄던 버스가 앞으로 움직여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하마터면 여행의 시작부터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었다.
절대적으로 느리디 느린 입국 심사를 힘겹게 거쳐 나가니 마지막에 세관 심사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따라오라고 하였다. 얘기인즉슨 ‘너희가 한국에서 사 온 면세품이 비싸기 때문에 자기들 나라에서도 관세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친절하게도 너네 나라는 800불까지 괜찮지만, 자기들은 미화 400불 이상에 대해서 세금을 받아야겠단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어쩌나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사무실로 한 한국인이 박차고 들어와 마침 책상 위에 놓인 -아마도 비슷한 이유로 빼앗긴- 자기 여권을 달라며 큰 소리를 치고 급기야는 현지 관세사(?)와 몸싸움을 곁들여 실랑이를 크게 벌이는 것이 아닌가. 현지인은 경찰을 부르겠다 큰 소리를 쳤지만, 사무실 바깥으로 한 사람은 여권을 쥐고 나가고 남은 이는 그를 쫓아가니 텅 빈 곳에 나와 아내 둘 만 남아 있는 어이없는 광경이 생겼다. 아무래도 삥을 뜯고자 하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검색해 보니 하루에 10불씩, 일종의 보관료를 내놓으면 물건을 갖고 나가게 해 준다는 경험담이 있었다. 결국 우리보다 앞서 실랑이를 벌이던 분과의 혼란한 틈을 타 몰래 빠져나왔고, 호텔에서 준비한 셔틀을 타고 무사히 왔다는 웃지 못할 사건.
떠나는 날은 공항 체크인이 말썽이었다. 기다리는 줄이 긴데도 적절한 탑승객 배분이 안되다 보니 한쪽만 빠른 수속이 되었다. 특히 한 직원의 체크인 과정이 유독 오래 걸렸다. 내가 아는 체크인 과정이란 여권 주고 좌석 확인하고 짐 부치면 되는 것인데 무엇이 이리 오래 걸리나 싶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다른 줄을 선 아내가 결국엔 우리 일행보다 앞서 다른 직원에게 불려 감으로써 오히려 더 빠르게 일처리가 되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유난했던 그 직원은 체크인하는 사람이 맞는지, 입국 도장은 잘 찍혔는지, 탑승권은 제대로 되었는지 등등 무려 세 번씩 검토를 하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괜히 다른 직원에게 기다림에 대해 한참을 클레임 해야 했다. 그의 꼼꼼함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완벽하고 오차 없는 일처리 기회와 고객들의 힘든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등가 교환하는 것이 맞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라고 해서 관광객을 위한 만반의 준비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물론 어버버 하다가 바가지를 쓰는 등의 불쾌한 체험들도 모두 여행의 추억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쉽게 잊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추측해 보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항에서 다이내믹한 일보다는 관광지에서 더 많이 즐기고 느끼고 경험하길 바랄 것이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인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과 전 과정의 막힘없는 부드러움을 다시 상기해 보면, 어떤 한 사회의 시스템이 일정 수준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것의 이유를 '성공하고 싶어 하는' 우리 사회의 욕망에서 찾아본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 아니라 일류가 되고 싶은 높은 목표,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정치적, 사회적 지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지나치리만큼 높은 교육열과 누구와 붙어도 이겨보겠다, 지고는 못살겠다는 경쟁 심리가 반영된 우리 사회의 단면도 생각이 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가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묘했던 오랜만의 여행 기록이자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