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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02. 2023

강연료에 대한 생각

모 대학 교수님의 초청으로 지난 2년 동안 매 학기마다 강연을 다녀왔다. 학기에 1회, 어떤 때는 2회. 내용이야 별다를 것 없다. 이미 출간한 책인 ‘연구하는 회사원’에 대한 현실적인 선배의 조언과 경험기 나눔이다. 1시간짜리 강연이라 숨도 차고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내용 전달, Q&A 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터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여 처음 불러줄 때야 고마운 마음으로 언감생심 주는 대로 강연료를 받았다. 사실 첫 강연에서도 정확한 강연료를 듣지 못하고 그냥 갔었다. 당연하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에 대한 대가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인상을 줄까 걱정되는 까닭이었다. 지나친 엄숙주의 때문인지, 돈만 밝히는 놈이란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인지, 뭐 복잡다단하다.

강연이 어느 정도 정례화 되어 가니 마음이 달라진다. 게다가 비슷한 위치의 다른 학교에서는 지금 이 대학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강연료를 받은 경험도 있었다. 물론 항시 강의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강연을 위한 노력이 없지 않았다. 게으른 강사 티 내기 싫어서 그래도 조금씩 업데이트를 했다. 강연하면서 반응 좋았던 부분은 더 살리고, 별다른 재미없거나 학생들에게 와닿지 않을 내용은 지웠다. 자료를 찾는 시간과 노력이나, 실제 업계의 경험과 경력을 나누는 행위 등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적어도 내 일비에 준하는 금액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계에 있는 대학 친구들을 통해 물으니 평균적으로는 내가 여태 받아 온 금액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국룰이랄 것 까지도 아니다. 주는 사람 마음이다. 현실적으로는 연차나 반차를 써야 그 대학까지 강연을 갈 수 있으니 이제는 보상의 수준을 높여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얼마 전 마침 강연 요청이 왔길래 겸사겸사 교수님께 슬쩍 운을 띄웠다. 역시나 강연료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어쩐지 모양새가 좀 빠지는 느낌이 있다.


이런 고민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나야 본업이 있고 작가는 부업이지만, 전업 작가들에게도 강연료 고민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다. 시간이 좀 된 글이지만 내 고민과 비슷하여 가져와 봤다.


https://ch.yes24.com/Article/View/41190


강연료 얘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 작가의 마음이 부쩍 이해가 되었다. 강연료 얘기만 나오면 나누던 협의가 중단되거나, 돈 대신 다른 걸로 퉁치는 경우까지 있다 하니 참.. 한때 문제가 되었던 열정페이만큼이나 누군가의 경험이나 생각을 사는 것에 대해, ‘에이 그걸 뭐 이렇게까지 돈으로 줍니까’ 하는 생각을 가진 곳이 여전하다는 현실이 아쉽다.



강연료를 못 받은 것을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생각난 일화가 있다. 상무님이 모교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수락은 했는데 사정이 생겨 당신이 못 갈 것 같다고, 미안하지만 대신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여 대리 강연을 갔다. 내 모교이기도 하니 기쁜 마음으로 찾았었다. 저녁 7시 넘어 시작한 강의를 2시간 넘게 하고 나오는데, 보통 강연료 지급을 위한 인적 사항 요청이 없었다. ‘따로 알아서 주나 보다’ 했던 건 나의 착각. 애초에 개인적 인연으로 강연 섭외가 일어났는지는 모를 일이나, 대신 온 사람에게 고마운 티는 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돈 안 준다고 상무님한테 따질 수도 없어서 지나갔던 그런 경험. 욱했던 일이 생각나 잠시 옆 길로 샜다.



예상대로 강의료 인상 결정은 교수님의 권한은 아니었다. 대신 담당자가 있으니(실제로 이 수업을 주관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강의 내내 함께 하여 안면이 꽤 있다) 그와 얘기해 보라 하셨다. 나름대로 강연을 준비하고 찾아가는 과정, 대략의 인건비까지 까면서(?) 강의료 인상을 한 번 검토해 주십사 메일을 썼다. 분명 담당자는 어렵다고 할 테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대응을 할까, 네고를 받아줄까 아니면 다른 딜 조건을 대야 하나 잠깐이나마 고민을 했었다.


일주일이 지나가지만 답이 없다.


방학이라 일 안 하고 있어서? 이런 요청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없으니까? 별 시답지도 않은 강연자가 몸 값 타령하면서 나오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아니면 대꾸의 가치도 없으니까? 도통 모르겠다. 차라리 안됩니다, 미안합니다,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요라고 한다면 맘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수긍을 하는 척이라도 하지 싶구먼. 물론 강연료를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잘 안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강사의 급에 따라 내부적으로 정해진 금액이 있다. 강연료는 강연의 시간과 강사 등급의 함수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적당한 명분 없이 바꿀 수는 없다. 그걸 누가 모르겠냐마는, 내 강연의 가치에 대해 학교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기준만큼이나 강연자 스스로 결정하는 가치가 일치하는지 확인해 볼 기회 정도는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작은 항변이다. 대체 읽긴 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읽지 않음인지 조차 모르게 지나가 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 읽씹이 나은건지 읽지도 않았다면 그게 더 기분 상하는 것인지.. 무엇이 되었든 나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성적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다음에도 가야할까 망설여지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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