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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19. 2023

독서의 이유 - 글 항아리에 담을 물 깃기

요즘은 아침 출근해서 오전 일과 시작 전, 점심 먹고 와서 오후 일과 시작 전, 그리고 퇴근 후 더 이상 볼만한 영상이나 글이 없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세 가지 다른 시간대에 책을 읽는다. 특히 점심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점심 후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동료와 수다를 떨거나 유튜브 시청을 하는 등에 쓴다. 관계를 위해 한때는 점심 먹고 수다의 장소로 함께 가곤 했지만 어쩐지 ‘내 시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선 이후론 자리에 앉아 책을 집어 드는 횟수가 늘었다. 별일 없으면 회사 식당을 이용하고 밥을 빨리 먹고 나오다 보니 점심에 남는 시간이 소중하게 쓰이는 기분이다.


예전과 달라진 독서의 패턴과 자세라면 꼭 길게 오랫동안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짧게라도 잠깐 손에 책을 쥐려고 하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내용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점이다. 중요한 문구를 만났을 때는 무조건 스크랩하고 그에 대해서 내 생각을 펼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노력들이 지금의 글쓰기와 독서 습관에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즘엔 전체적으로 내용을 살피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파악하는데 신경 쓴다. 지엽적인 관점을 버리게 되었달까? 그 때문인지 전체적인 톤&매너(책에도 이런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으나)를 살피는 것은 되는데 구체적 사실은 놓치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한다. 실제로 좋은 내용이다..라고 생각하며 읽은 책들의 경우에도 다 읽은 후 - 아니 읽는 동안에도 - 뭐가 남았는지 돌이켜 보면 의외로 별 것 없네 하는 자조 섞인 감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책의 두께와 내용을 생각할 때 몇몇 인상적인 구절과 단락이 있지만 명확한 감상 포인트는 또 뭘까 싶은, 차라리 예전처럼 찬찬히 뜯어보는 독서 습관을 다시 불러와야 하나 고민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든 무엇을 꺼내어 쓰는 행위. 

어쩐지 항아리에 든 물을 퍼내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항아리의 크기가 큰 사람은 한참을 퍼내도 아직 많이 차 있겠지만 고만고만한 크기를 가진 나로서는 자주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와 채우는 수밖에 없다.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 자꾸 퍼낼 궁리만 하는 듯하여 걱정이다. 그러므로 나의 독서는 대단히 목적성이 강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 잘 쓰려면 많이 읽으라는 옛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구나. 

막 길어온 물을 항아리에 채우다가도 갑자기 덜어내고 싶은 충동에 쌓인다.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며 물을 퍼도 될까, 행여 작은 파문이라도 일면 어쩌나 하는 고요함을 즐기는 고수는 아니라서, 어디서 새로운 물을 길어 오다가도 당장 써먹을 곳이 생기면 뒤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퍼내는 것이다. 담기도 전에 급한 마음으로 덤빈다. 숙성의 기술, 여러 곳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길어 온 수원의 특성이 모여 새로운 가치를 발현할 틈을 주지 않으니 다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수작을 만드는 힘은 없지 싶다. 고백하자면 지금의 이 글도 조금 전 읽던 책이 던진 일종의 영감을 일단 적고 보자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읽던 걸 멈추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책을 읽으면, 특히 에세이 같은 장르는 나를 들뜨게 한다. 글 쓰고 싶게 만든다. 책을 보다가 영감을 받는 내 모습이 가끔 웃기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마치 대단한 글감을 찾아낸 양, 위대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 찾아온 영감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하는 자세로 부다다닥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난 언제나 글감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것이니, 오늘도 열심히 글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놓아야겠다. 그렇게 책을 다시 손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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